오피니언 사설

당당한 태극 소녀들, 마지막까지 선전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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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태극 소녀들이 큰일을 해냈다.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언니들(20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이 지난달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데 뒤이은 쾌거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건 남녀 불문하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남자팀보다 국민의 관심도, 정부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늠름하게 승리를 향해 달려온 어린 선수들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U-20팀의 골잡이 지소연 선수가 그랬듯 여민지·주수진 같은 U-17팀 선수들 역시 ‘제2의 박지성’을 꿈꾸며 어린 시절부터 그라운드를 힘차게 누벼왔다.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는 선배들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이들은 큰 경기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다.

당차고 발랄한 이들 신세대를 U-17팀 최덕주 감독은 특유의 푸근한 리더십으로 조련했다.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痼疾)로 통해온 체벌과 욕설 대신 정감 있고 꼼꼼한 설명으로 지도했다. “유소년 축구는 즐겁게 공을 차는 것이 최우선” “윽박지르고 때리는 감독 눈치 보면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처럼 기(氣)를 팍팍 살려주는 최 감독에게 선수들은 연일 멋진 경기로 화답했다.

비단 최 감독뿐이 아니다. U-20팀 최인철 감독도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진 뒤 선수들 방을 일일이 찾아가 “괜찮다”고 다독이는 감성적 리더십으로 FIFA 주최 대회 사상 첫 3위란 신기록을 일궈냈다. 과거 호랑이로 불리던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올해 남아공 월드컵에선 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축구를 온몸으로 즐기는 신세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거침없이 당당한 DNA를 타고난 젊은 선수들, 권위주의를 버리고 이들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감독들이 합심해 한국 스포츠의 새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26일 일본과 결승전을 치르는 U-17팀이 다시 한번 선전(善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