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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국 경제의 공정성을 높이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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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운동경기에서 패자들이 게임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게임 규칙이 공정하고 심판이 편파 판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에서 패자가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시장경제 규칙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시장경제가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공정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한국 시장경제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 아직도 한국경제의 성공을 “기회주의자가 득세하고 정의가 실패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지난 40여 년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이 과연 공정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0여 년의 압축적인 고속성장 과정에서 모든 것이 공정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한국의 경제적 성공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앞으로 한국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자는 미래지향적인 비판이라면 좋지만, 그 때문에 한국의 경제발전이 실패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시장경제에서 공정의 의미는 경제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공정개념이 기본이다. 공정거래법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거래와 공정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경쟁을 제한하고 담합하는 것도 불법이다. 공정의 이름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거나 자유로운 거래와 경쟁에 규제를 가한다면 이는 공정거래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결과의 불평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은 의식주 및 교육·의료에서 소득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접근이 보장되어야 달성된다.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최소한의 의식주와 교육·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는 결과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가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복지도 자원이 투입되어야만 생산 공급이 가능한 서비스다.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무제한 공급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든지 사회주의 국가든지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은 그 경제가 가진 경제력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이념이나 집권당의 정강정책과는 무관하다. 1985년까지 우리나라의 무상교육은 초등학교 6년까지였다. 지금은 중학교까지 9년이 무상교육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교육이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다.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에는 전 인구의 9%만이 가입대상이었다. 보험이라고 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미흡한 제도였다. 그 당시 국민소득은 1000달러 수준이었다. 지금은 온 국민의 99%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의료제도가 아니라 늘어난 국민소득이다.

공정과 기회균등이 강조되는 요즘 무엇이 진정으로 한국경제의 공정성을 높이고 서민에게 기회를 주는 길인지 보다 냉철하게 생각해볼 때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