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재앙 그 후…] 태국 피해지역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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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찬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쓰나미가 태국 까오락과 푸껫·피피섬을 덮쳤다. 태국 정부는 7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쓰나미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4~6일.쓰나미가 할퀴고 간 현장을 본지 기자가 찾아가 봤다.

◆ 유령의 도시 된 까오락=태국 국왕이 '왕족 휴양지'로 지정할 만큼 태국에서도 첫손 꼽히는 아름다운 곳 까오락. 하지만 지난 4일 기자가 방문한 까오락은 을씨년스러운 유령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까오락에서는 한국인 6명과 태국 국왕의 외손자를 비롯해 5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주민들이 부서진 건물을 팽개치고 떠나는 바람에 해변도로 건너편 멀쩡한 상가들도 문을 연 곳이 없었다. 택시기사 통(34)은 "한달 동안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갈아엎는 작업만 했다"며 "그 작업이 끝난 일주일 전부터는 복구장비가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니사라 이재민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탄사굴차이(38)는 "완전 복구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까오락 사니사라와 반무엉 이재민촌에는 주민 3500여명이 수용돼 있었다. 이곳에서 이재민들이 하는 일은 매일 구호품을 타는 것이 전부다. 사니사라 이재민촌에 수용된 따오(42.여)는 "일자리를 찾아봤으나 번번이 실패해 이재민촌에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가는 물론 인근 고무농장도 모두 쓰나미 피해를 보아 일자리라곤 없다. 재기하려야 재기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재민촌 가까이에 설치된 임시 시신안치소에서는 지금도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요즘도 실종자의 유품과 시신 일부가 발견돼 안치소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1만여명이나 됐던 자원봉사자도 하나 둘씩 떠나 지금은 1000명도 안 된다는 게 현지 경찰의 얘기다. 탄사굴차이는 "집 지을 자재가 없고, 사람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한국인 9명을 포함해 2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피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베이뷰리조트의 피사람 트랑카솜바트 사장은 "중장비가 없어 호텔 종업원들이 손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5일 태국 남부 푸껫의 한 산 정상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쓰나미 최대의 피해 지역인 빠똥비치를 가리키고 있다. 쓰나미가 강타하면서 이 지역 주민과 관광객 540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실종됐다. [빵똥비치 AP=연합]

◆ '제2의 쓰나미' 겪는 푸껫= 푸껫에선 빠똥비치 인근의 일부 상가만 문을 닫았을 뿐 대부분의 호텔과 상가가 영업 중이었다. 언뜻 봐서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푸껫에선 쓰나미로 200여명이 숨졌지만 리조트.상가시설은 10% 정도만 피해를 보았다. 그나마 10%도 빠똥비치에 집중됐다. 이 때문에 푸껫 내 대부분의 호텔은 모래만 걷어내고 3~7일 만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뜸하다. 예전같으면 푸껫은 지금이 최고 성수기다. 11월부터 4개월 동안 호텔 투숙률이 97%를 넘었다. 하지만 푸껫관광협회 집계에 따르면 560개 호텔의 요즘 평균 투숙률은 7~10%에 그치고 있다.

이 협회 실파논 회장은 "푸껫 주민의 90%가 관광업에 매달리는데 쓰나미 이후 관광업계 한파가 몰아쳐 이들이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제2의 쓰나미"라고 불렀다.

1000여명에 달하는 한인의 피해도 크다. 여행업 종사자 신성수(30)씨는 "외환위기나 사스 파동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며 "한 달 넘도록 한국인을 볼 수 없어 일부 여행사와 식당이 부도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객실의 50%를 한국인이 차지했었다는 반얀트리 리조트 측은 한국인에 한해 1박에 1800달러나 하던 최고급 빌라를 200달러에 내놨다. 성수기 일반 객실료가 400~500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주민들은 "푸껫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에게 기부하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까오락.푸껫.피피에서]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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