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개혁 논쟁 막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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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廣東)성 선전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개혁’ 발언 이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본지 9월7일자 14면'후진타오 정치개혁 신호탄'>

다음달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5중전회)를 앞두고 공산당 기관지들이 정치개혁의 방향과 강도를 놓고 첨예한 사상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中央黨校)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는 13일 1면에 ‘정치개혁을 인민이 원한다’는 허우샤오원(侯少文) 당교 교수의 글을 실었다. 허우 교수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지난달 21일 선전에서 제기한 정치체제 개혁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15일 ‘학습시보가 정치개혁 논쟁에 뛰어들었다’며 이 논쟁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당교는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산실로 중국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교장을 맡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도 당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최고 지도부 인사들과 당 간부들이 국정 이데올로기를 교감하고 체화하는 공산당의 중추 기관이다.

앞서 공산당 좌파 입장을 대변하는 광명일보와 광둥성 당 기관지 남방일보가 원 총리 발언에 대한 찬반 입장을 놓고 지면을 달궜다. 광명일보는 지난 4일 ‘두 가지 다른 성질의 민주주의가 섞이는 것은 불가하다’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이를 신랄히 비판했다. 광둥성 왕양 당 서기는 후 주석의 정치적 기반인 공청단 출신으로 후 주석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다. 남방일보는 ‘정치개혁은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며 원 총리의 정치개혁 발언에 크게 화답했다.

원 총리의 정치개혁 발언은 불과 2주 뒤 후 주석이 ‘백투백(back to back)’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탄력을 받았다.

후 주석은 지난 6일 ‘선전경제특구 건립 30주년 경축대회’에서 “법에 따라 민주선거, 민주적 정책 결정ㆍ관리ㆍ감독 체제를 구축하고 국민의 알권리ㆍ참정권ㆍ표현권, 감독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4개 민주론’‘4개 민권론’을 제기했다.

홍콩 봉황위성TV 허량량 총편집은 “후 주석의 연설에서 정치개혁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며 4개 민권론ㆍ민주론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구적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SCMP는 원 총리와 후 주석의 발언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주주간도 한 때 ‘원 총리가 사면초가에 빠졌다’며 권력 내부 갈등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하지만 최신호에선 “후 주석과 원 총리는 중국의 정치개혁을 주장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발 빠르게 입장을 전환했다.

후 주석 발언 이후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인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연설”이라고 강조했다.

30년 경제 개혁ㆍ개방으로 경제는 고도 성장했지만 부의 편중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패가 만연해 이를 관리 감독할 제도적 장치로서의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후 주석과 원 총리가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홍콩의 중국 정치 분석가들은 ‘점진적인 정치체제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홍콩 총영사관 전가림 선임연구원(중국 정치학 박사)은 “중국의 정치개혁의 방향과 개념은 돌 다리도 두드리고 걷는 중국식 개혁 방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30년 정치개혁이 첫 발을 떼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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