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국책사업] 지연 따른 손실 고스란히 국민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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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에 이어 새만금 사업도 중단 위기를 맞았다.

이들 사업 외에 ▶부안 원전수거물관리시설(원전센터)▶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터널구간▶경인운하 등 다른 대형 국책사업도 환경파괴, 경제성 논쟁 등에 휘말려 사업 자체가 무산되거나 공사가 지연되는 사태를 겪었다. 지역주민과 환경론자의 반대에 밀려 주요 국책사업이 잇따라 좌초위기에 빠진 것이다.

김세호 건설교통부 차관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국책사업을 찾기 어렵다"며 "자칫 민자유치사업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대처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주요 사업의 지연 때문에 생기는 천문학적인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충분한 사업 타당성 검토와 여론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한 것이 문제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 연이어 흔들리는 국책사업=지난 3일 정부와 지율 스님 측의 합의로 사실상 공사중단 위기를 맞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는 계획 초기부터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는 당시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터널공사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논란이 본격화됐다.

천성산 구간의 공사 지연은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전체의 차질로 이어진다. 당초 정부는 2008년까지 대구~경주~부산 구간을 완공할 계획이었다. 현재는 완공목표 시기가 2010년으로 늦춰졌다. 정부는 1년간 공사를 중단하면 2조5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속철도 사업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시작됐다. 노태우 정부 당시 사업성보다는 정략적인 판단이 컸다는 것이다. 최근 이해찬 총리도 "경부고속철도사업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라며 "정치적인 목적에서 수요를 고의로 부풀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새만금 사업 역시 사업 추진 배경과 경제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인운하는 또 다른 국책사업 실패 사례다. 인천과 김포대교를 잇는 경인운하는 논란 끝에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굴포천 방수로공사로 축소됐다. 이 과정에서 1700억원의 국고만 축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과 부안 원전센터는 사전에 충분한 여론수렴이 없어서 난관에 봉착한 사례다.

정부는 당초 사패산이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는 이유로 여론수렴을 소홀히 했다. 그러다 뒤늦게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환경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고 2003년 말 공사를 재개할 때까지 무려 1년반 동안 공사를 중단했다. 공사지연으로 인한 손실액만 5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별 대안 없이 반대만 외친 종교계와 환경단체의 책임도 적지 않다. "대안을 내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해도 내지는 않고 반대만 한다"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하소연이다.

부안 원전센터도 지역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여론수렴과 설득작업 없이 정부가 지나치게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지적이다. 또 환경단체가 주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한 점도 갈등을 부추겼다.

◆ 대안은 없나=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충분한 사전 검토와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실패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김현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사업을 추진할 때는 사업 추진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대한 설득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는 또 "사업성 검토를 하더라도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러 계층이나 집단의 의견을 들어보고 그런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김광웅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사업 계획단계부터 정치적 목적을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히 사업성과 경제성 위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쳐 추진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도 반드시 승복하고 따르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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