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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보다 중요한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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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치적인 측면에선 이들 은행에 준 구제금융과 회수정책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경제적으론 이들 은행이 장차 구제금융 덕을 볼 기대를 품고 스스로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아 ‘도덕적 해이’ 문제, ‘규모가 작아 망해도 될 만하다(small-enough-to-fail)’고 여겨지는 타 은행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수단이 논의되는 중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에 대해 높은 자기자본비율, 금융감독 강화, 거래활동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자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정책들은 대형 은행들에 자신들이 실패하면 많은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줄 것이다.

물론 대마불사 문제의 해법은 반드시 찾아야 하지만 그 일에만 집중하는 건 위험하다. 다른 근본적 문제들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구제금융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거대 금융기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만약 10년 후 우리가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들 은행을 구제하는 데 들어간 직접비용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해준 부분은 실제론 비용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 걸로 나타나곤 한다. 또한 자본투자를 해준 경우에도 나중에 지분매각을 통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의 비용을 회수하기 마련이다. 구제금융 비용은 국가별로 대개 국내총생산(GDP)의 몇% 수준이다.

정작 심각한 건 나랏빚 문제다. 이번 위기로 영국과 미국의 GDP당 국가부채 비율은 기존보다 40~50%포인트 상승했다. 경제성장률 하락, 실업률 증가, 개인 자산 및 수입 감소 등 경제적 손실은 더 큰 문제다. 이는 경제의 핵심 문제가 대마불사가 아니라 극과 극을 오간 대출행태가 초래한 거시경제적 변화라는 걸 보여준다. 싼값에 무분별하게 돈을 퍼주다가 그다음엔 돈줄을 말려버린 상황 말이다. 미국에선 지방 은행들에 의한 과도한 부동산 담보 대출이 이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들 은행이 망하더라도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안일한 기대가 시장에 팽배했다. 영국도 두 개의 거대 은행 외에 중소 은행들을 중심으로 한 주택과 부동산 대출 부실 문제를 안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국제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은행들이 주도한 부동산 대출 붐에 따라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같은 위험은 대마불사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대마불사 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문제에만 매달리는 건 위험하다. 위기를 촉발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놔둔다면 미래에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아데어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장(FSA)
정리=이승호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