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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순혈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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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70년대 황소개구리는 ‘기적의 식품’이었다. 농가 수입 증대는 물론 보릿고개를 갓 넘긴 국민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이 될 터였다. 한데 이내 천덕꾸러기로 변한다. 전국의 하천과 저수지를 점령하면서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퇴치에 나선 정부는 장관이 나서서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식의 시식회까지 열었다. 그런 황소개구리가 사라졌다. 이유는 무차별 포획보다 근친교배가 초래한 자연도태라는 게 정설이다. 좁은 지역에서 끼리끼리 짝짓기를 계속하다 보니 악성 유전자가 대물림됐고, 단순해진 유전자 구조로는 새로운 환경호르몬이나 오염물질에 적응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진화의 모태는 불완전성이다. 완전성을 추구하는 생물들은 그래서 이종교배(異種交配)를 택한다. 완전하다면 자가분열이 최상이다. 이 점은 원시세포도 알았다. 침입(?)한 다른 세균을 배척하지 않고 공존공영(共存共榮)을 모색했다. 그 흔적이 우리의 체세포 내 미토콘드리아다. 종족의 쇠퇴와 멸절(滅絶)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으로 족외혼(族外婚)의 필요성을 알았을지 모른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한 뿌리 학문끼리 교접(交接)은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학문은 쓰레기와 다름없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이 이성(異性)·이교(異校)간 교잡(交雜)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다.

하버드대의 첫 여성 총장인 드루 길핀 파우스트는 하버드 출신이 아니다. 단과대학인 브린모어대를 나왔다. 석·박사 학위도 펜실베이니아대다. 하버드대는 유에스뉴스(U.S.News) 종합대학 순위에서 부동의 1위다. 반면 브린모어대는 단과대학 중 30위다. 우리로 치면 서울대 총장에 지방사립대 출신이 보임된 셈이다. 프린스턴대 셜리 틸먼 총장은 캐나다 퀸스대 출신이며, 브라운대 루스 시먼스 총장은 딜라드대 출신이다. 이들 모두 여성이다. 한국계인 다트머스대 김용 총장은 브라운대 출신이다.

우리 대학의 학문적 동종교배(同種交配)는 심각한 수준이다. 임용 교수가 서울대 88%, 연세대 76%, 고려대 60%나 모교 출신이란다. 이들 대학 총장 또한 모두 자교(自校) 출신이다. 여성 총장은 언감생심이다. 제주의 ‘한라봉’은 중국계 ‘청견’을 일본에서 교잡해 개량한 감귤이다. 그렇지만 한라산 토양에서 세계적 명품 감귤로 재탄생해 일본에 역수출한다. 국경 없는 학문에 원시세포만도 못한 순혈주의의 종착점은 뻔하다. 자연도태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