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진상규명] '박정희 정권' 5건…정치적 의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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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위원장 오충일 목사)가 3일 발표한 우선 조사 대상 의혹 사건들은 폭파.간첩.납치.실종.사유재산 강제 헌납 등 다양한 형태다. 모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개입한 사건들이다. "과거 공안기관이 사회.정치 등 여러 분야에 과도하게 개입한 의혹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골고루 사건을 선정했다"는 게 진실위 측의 설명이다.

진실위는 이번에 선정된 사건들이 정보기관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의혹 중 ▶사회적 의혹이 큰 사건▶시민.사회단체 및 유가족 등 사건 관련자들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과연 진실이 밝혀지겠느냐는 현실적 고려도 했다고 한다.

진실위는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사건'은 5.16 주도 세력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사유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의혹을 파헤쳐 정경 유착과 불법 정치자금 조성 과정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기업인을 정권의 시녀로 만든 중요한 사례"라는 주장이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길들여온 대표적 경우임도 감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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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과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을 자행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이 사건들은 관련자 상당수가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 중이어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의 경우 3선 개헌을 통한 장기 집권을 도모하기 위해 대형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들여다 볼 계획이다. 음악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 같은 문화계 인사들이 이 사건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던 점에서도 주목된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인 '정적 제거'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범행을 지시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는지와 살해 계획도 있었는지가 초점이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 조사를 통해 진실위가 기대하는 것은 사건 규명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의 정치 개입 전반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진실위는 이 사건 직후 10.26 사건이 발생, 관련 자료들이 기무사 등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실위는 'KAL 858기 폭파 사건'에 대해서는 김현희에 대한 조사도 고려하고 있다. 수사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나 국민이 많은 의혹을 갖고 있는 만큼 철저히 되짚어본다는 생각이다.

논란은 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느냐를 놓고 전개되고 있다. 진실위는 "정치권 논의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박정희 때리기'"라고 지적한다.

전두환 정권 때의 'KAL 858기 폭파 사건'과 노태우 정권 때의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제외한 5건은 모두 박정희 정권 때 벌어진 일이다. 5.16 1년 뒤인 1962년의 '부일장학회 헌납'부터 10.26 20여일 전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까지 집권 전 기간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63년 7월~69년 10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 전 부장은 '동백림 사건'과 '인혁당 사건' '경향신문 매각 사건' 당시 중정을 지휘했고,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자신의 실종 사건까지 진상 규명 대상이 됨에 따라 '피해자 신분'도 겸하게 됐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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