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 인천상륙작전 첩보 영웅 동상 건립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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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60주년 전승을 기념해 당시 첩보활동을 하다 전사한 장교의 추모 동상 건립이 추진된다.

해군OCS장교(학사장교)중앙회(회장 김동건)은 14일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첩보활동 중에 전사한 임병래 중위를 추모하는 동상을 건립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 동건 회장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큰 기여를 했으며 끝까지 전우의 탈출을 돕고 자신은 마지막에 남아 자살을 하는 임 중위의 숭고한 군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건립키로 했다"며 "해군사관학교 교정에 오는 11월 중에 세월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장현 부회장은 "동상 건립에는 약 1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현재 회원들을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1950년 맥아더 사령부는 극비리에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 정보 수집을 위해 미군 첩보부대를 투입할 것을 고려 했으나 언어 장벽과 지리에 밝지 못한 점을 감안하여 우리 해군에 요청하였다. 당시 해군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은 해군 정보국장인 함명수 소령을 불러 정보 수집임무를 지시했다.

함명수 소령은 비밀리에 임병래(당시 소위), 김순기 정보 장교 등과 사병 6명, 민간인 7명을 선발해서 8월18일 새벽에 부산항을 출발 6일 뒤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흥도에 도착했다. 영흥도는 해군이 8월20일 상륙작전을 감행해 탈환한 최초의 최전방 해군기지였다.

함소령은 효과작인 임무 수행을 위해 대원들을 3개조로 분리했고 임병래 조는 인천 등지로 잠입해서 첩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인천은 당시 북한 정규병력이 주둔해 있었고 각종 정보기관이 삼엄한 경비 활동을 하고 있었던 곳이다. 임병래 소위조는 이곳에서 6.25전쟁 전 정보국의 지하조직요원으로 활동하던 정보원을 재 포섭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그 정보에는 인천해안포대의 위치, 병력 배치상황, 주둔 병력의 규모, 화력 그리고 해안진지의 방어태세 등이 포함된다. 심지어는 월미도에 잠입해서 북한군관 2명을 납치해서 북한군의 상세한 정보를 획득했다.

수집된 북한군 정보는 9월1일 영종도에 온 미 극동 사령부 정보국 소속 클라크 해군대위 팀에게 전달되었고 직접 맥아더 사령관에게 송신되었다. 북한군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바탕으로 D데이를 정해 모든 작전 준비를 마친 맥아더 사령부는 14일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오전 2시 영흥도에 집결해 철수 준비를 서두르던 첩보대를 향해 북한군 1개 대대가 기습 공격을 했다.

첩보대원들은 임병래 소위의 지휘아래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이였다. 임소위는 대원들에게 탈출하도록 지시하고 자신과 홍시욱 일등병은 남아 항전을 계속했다. 홍시욱 일등병은 다가오는 적을 M1소총으로 끝까지 사살한 후 마지막 한 발의 총탄으로 자결했다. 이어서 임소위는 45구경 권총으로 이마에 총을 쏴 자진하는 길을 택했다. 군사기밀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은 것이다.

미 정부는 3년 뒤 53년 7월6일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일등병 두 영웅에게 은성훈장을 수여했고 한국 정부는 54년 1월4일 인천상륙작전에서의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각각 중위와 이등병으로 1계급씩 특진했다.

해군학사장교중앙회 02-557-5355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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