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율 스님 단식 중단 이후가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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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남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해 온 지율 스님이 100일 만에 단식을 풀기로 결정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스님의 야윈 모습과 "이미 육체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의료진의 경고에 우리 모두 안쓰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막판에 이해찬 총리가 단식현장을 방문하고 긴급 관계장관 회의까지 열어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래서 나온 것이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3개월간 조사를 하고, 이 기간 중에는 조사에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기로 한 타협안이다. 지율 스님이 요구해 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이럴 바에는 정부가 왜 100일 동안 단식사태를 뒷짐 지고 방치했는지 의문이 든다. 천성산 공사는 두 차례에 걸쳐 9개월이나 중단돼 이미 1조9000여억원의 손실을 초래했다. 터널 공사도 195m나 파들어간 상태다. 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안이다. 새만금.원전센터 등 다른 국가정책 사업들이 유사한 사태로 표류될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의 정책 사업이 이런 식의 단식이나 저항으로 헝클어진다면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걸린 문제다.

따지고 보면 이 문제가 확대된 이유는 정치권 탓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터널 공사 중단과 대안노선 검토를 공약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측이 있다. 시화호.새만금 사업에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가 개발의 정당성만 확보하고 주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중단됐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만약 환경조사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가 부적합한 것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사 결과에 한쪽이 불복하면 단식 사태가 재발되지 않을 것인가. 노선 변경으로 결정 나면 지금까지 헛공사한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식의 단식으로 사태가 봉합되는 것은 국가로서도 불행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