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연예] 가족, 드라마와 현실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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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가족 사진이 있다. 3대에 걸친 13명의 대가족이 함께 모여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명절이라도 한두명쯤은 피치못하게 빠질 수도 있게 마련인 요즈음으로선 무척 보기 드문 장면이다. 다름 아닌 KBS의 주말드라마 '부모님전상서'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등장인물 소개 사진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시간대에 편성돼 경쟁 중인 MBC '한강수 타령'(사진) 역시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단 한장의 이미지에 담아야 한다면 결국 비슷한 모습의 '가족 사진'일 수밖에 없으리란 점이다.

지난해 이맘때도 두 방송사는 주말 연속극으로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 가능성'을 중심 모티브로 한 '애정의 조건'과 '장미의 전쟁'을 나란히 방송했다. 비록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혼율 증가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심각한 시기였다는 정황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그러니까 2005년 2월의 중요한 특징적 징후가 '가족애의 확인'쯤일 것이라 넘겨짚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긴 언제라고 해서 '가족'이 강조되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다. 드라마의 소재가 지나치게 가족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되풀이되기도 했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자녀 세대의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는 과정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면서 온통 '짝짓기'에만 열중하는 듯한 모습이 곱지 않은 눈길을 받기도 했다.

2005년의 '가족'은 좀 색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 '부모님전상서'를 보자. 어머니는 결혼 문제에 관한 거짓말이 들통난 아들에게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이냐"는 투로 다그치는 대신 '거짓말' 자체를 더 나무란다. 딸의 결혼에 '목숨 걸다시피' 집착하는 상대편 부모와 대비돼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대책 없이 결혼부터 하려 드는" 것처럼 한심한 일은 없다고 여기는 아들이나, 폼을 잡다 못해 허황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친구를 도무지 못 견뎌 하는 딸이나,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도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고지식한 구석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심지어 분가를 원하는 며느리조차 막상 허락이 떨어지자 때가 아니라고 고사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다.

하물며 발달장애가 있는 손자를 대하는 온 가족의 태도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본받을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 모든 평화가 가부장의 권위에 바탕을 둔 질서라는 점이다.

'한강수 타령'도 엇비슷하다. 다들 제 자식만 싸고 돈다는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려운 '과부 살림'에도 조카들까지 자식으로 거두는가 하면, 오갈 데 없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식구로 받아들여 며느리 삼는다거나 세들어 사는 총각까지도 식구로 여기는 일종의 '개방 가족'이 실현되고 있기도 하다. 역시 문제가 있다면 사촌도 이웃사촌도 차등이 없고 딸과 며느리도 언뜻 구분이 안 가는 이 가족애가 오로지 '엄마의 희생'을 볼모로 얻어진 대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이런 '아름다운 가족애'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당대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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