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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정한 사회’라는 외침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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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그러나 ‘공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때는 조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역사를 보면 정치가들이 ‘공정’을 외치다가 도리어 그 사회를 심각하게 불공정하게 또 불행하게 만든 예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공정’이라는 화두로 가장 재미를 본 사람들이다.

왜 ‘공정’이라는 가치가 부작용을 낳을까? 그 이유는 ‘공정’이라는 개념은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경쟁에 져서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는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불공정한 것이다.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는 부자의 재산을 강제로라도 그들에게 배분해 주는 것이 공정해 보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공정이란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불공정이 이루어졌던가?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일들, 예를 들어 치안을 확립하기 위해 경찰이 쓰는 고문, 폭력 같은 것들도 사실은 다 공정의 탈을 쓰고 자행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어느 나라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시민의 대다수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치가 공정을 외치는 것은 항상 정치적으로 이문이 남는 일이고 또 많은 포퓰리스트에 의해 이용되었었다.

물론 정치가 구체적 개별 이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산자 또는 산재(産災)를 당한 근로자에 대한 대우 같은 이슈들에 대해 정치권이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가 ‘공정성’을 하나의 개별 이슈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으로, 즉 도매금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그것은 시민의 온갖 불평, 불만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성에 대한 냉정하고 논리적인 접근을 해치며 도리어 많은 불공정을 낳을 수도 있다.

공정성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로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이 부당하게 희생되지 않는 것이고, 둘째로 사회의 제반 이익이 국가적 이상과 가치에 맞게 적절히 배분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를 의식하는 정치가 공정성의 이슈에 개입하게 되면 이 핵심 요소들은 쉽게 훼손된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이 공정이라는 가치가 정치적 이슈로 다루어지는 것을 최대한 경계한다. 대신 그들은 이를 헌법적 이슈로 접근한다. 그 나라의 이상과 근원적 가치를 담고 있는 헌법을 통해 공정이라는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정립하고 해석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가장 초연한 사법부에 맡기는 것이다. 법원이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헌법적 잣대로 공정이라는 개념을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하나의 기준이 투명하게 형성돼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정성에 예측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예를 들어 미국 헌법에서는 이 공정이라는 가치를 헌법에 명기된 ‘적법 절차(due process)’라는 어구(語句)를 통해 실현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사법부에 맡기고 있다. 이 적법 절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용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차적’인 것이다. 내용적 적법 절차는 국민의 기본권, 즉, 자유·평등·재산권·사생활 보호(Privacy) 등 국민이 당연히 가져야 할 제(諸)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절차적 적법 절차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목적을 이루는 절차가 공정하고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다(우리나라 헌법도 기본적으로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사법부가 판결을 통해 약자와 강자의 권리를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 하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소수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법적·논리적 일관성 하에 계속 체계적으로 규명해 왔고, 그러한 사법부의 역할이 미국 사회를 안정시키는 초석이 되어 왔다.

‘공정한 사회’라는 대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는 그것의 포퓰리즘적 함정을 간파하고 자제하는 사회다. 그 이유는 민주적 헌법이 제대로 살아 움직이는 사회만이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