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은 천안함 사과하고, 남은 인도적 지원 확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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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 특히 ‘인도주의 협력사업 활성화’까지 언급해 수해복구 지원의 확대를 희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핵실험으로 초래된 남북관계 긴장국면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조문단 파견 등으로 완화하려는 제스처를 취했을 시점이다. 이번에도 천안함 사건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을 풀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대외관계와 남북관계가 모두 막힘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크게 줄어든 것을 돌파하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카드로 활용해 왔다. 남쪽이 상봉을 원할 때는 마치 시혜(施惠)나 베푸는 듯이 응하면서 식량 지원 등을 이끌어냈고, 거꾸로 경색국면에선 남쪽이 호응하지 않을 수 없는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순수 인도적 차원의 사안을 이처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로선 못마땅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는 여건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북의 제의에 호응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까지 역제의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만으로 남북관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호전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남북관계를 적절히 해나가려 한다” “남북관계가 정상적 관계로 가기를 바란다” “제2 개성공단을 건설할 수도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쏟아냈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도 이에 대한 호응으로 볼 수 있어 낙관적 전망을 일단 가능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죄’를 전제로 제시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단순한 ‘추석맞이 행사’에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山)이 천안함 사건인 것이다.

남북 당국은 앞으로 개최될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적절히 사과하는 방안을 탐색하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남측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 규모를 크게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스스로 식량과 복구자재 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어 더욱 그렇다.

남북 모두 경색 국면을 무한정 끌고 갈 순 없는 형편이다. 핵 문제 해결을 바라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국의 요청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남한은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긴장 완화 필요성이 있는 한편 침체된 남북 경제협력의 확대를 바라는 목소리도 크다.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2012년 강성대국’을 내건 북한 입장에선 남북관계 개선 없이 만성적인 경제난을 타개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만큼은 남북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진정성을 발휘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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