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고 창의적 체험활동이 잘 나가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8일 오후 6시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동백고의 한 교실. 이 학교 이명원(2년)군이 1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칠판 대용으로 설치돼 있는 터치스크린을 두드리며 디스플레이 장치를 설명하는 중이다. 옆 교실에선 심사위원에 둘러싸인 황혜빈(1년)양이 ‘10분 안에 국보 많이 외우기’ 동백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동백고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창의적 체험활동 모습이다.


“요즘 LED(발광다이오드)나 3D, 홀로그램 같은 말을 많이 들어보셨죠. 이들은 모두 표시장치, 흔히 말하는 디스플레이의 일종입니다. 오늘은 이 디스플레이의 종류와 용도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조 나와서 발표해주세요.” 이군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토론회는 제법 격식을 차려 진행된다. 토론 매너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마다 토론에 참여하는 이들은 ‘상위1%에 도전하는 포켓 학습동아리 1%’ 회원이다. 포켓 학습동아리는 소규모 동아리를 뜻하는 동백고만의 명칭이다. 현재 이 학교에는 10명 이내의 포켓 동아리 9개를 포함해 총 35개의 창의체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1%’는 전교 석차 20위내의 2학년 학생들로 이뤄진 동아리다. 이들은 고교 과정 밖의 내용이라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의문을 풀지 못한 주제를 찾아 직접 조사하고 토론한다. 김진한군은 “1%에 참여하면서 관심 주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 수 있어 학습에도 도움된다”고 말했다. 오후 9시까지 진행된 이날 토론은 다음주 주제를 ‘뇌 탐구’로 결정하고 끝을 맺었다. 비슷한 시간, 옆 교실에서는 동백 기네스 신기록에 도전한 황양의 도전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다. 30여명의 학생들에 둘러싸여 소개를 받은 황양은 ‘우리나라 국보 외우기’ 신기록에 도전했다. 교내 역사동아리 ‘History Healer’에서 주관한 이번 기네스 행사는 10분 안에 50개의 국보 관련 질문을 맞춘 숫자로 기록을 정했다.

현재 동백 기네스에 올라있는 이 부문 기록은 지난 1학기에 세워진 39문제다. 주관 동아리에서 선출한 4명의 학생이 심사위원을 맡고 동백 기네스 위원회 교사 2명이 참관했다. 결국 이날 도전에서 황양은 42문제로 새로운 기록을 세워 기네스 인증서를 받았다.

현재 동백고에서는 ‘인사동에서 외국인들과 사진 가장 많이 찍기’ ‘최대 봉사시간채우기’ 등 총 28개 부문의 기네스 기록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주에는 사진동아리에서 진행하는 셀카(self camera) 콘테스트 기네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기네스 주관 신청은 동아리별로 매년 초에 이뤄지는데, 실시 시기와 진행방식을 한 달 전에 공고해 진행한다. 학교장의 인증서가 수여되는 만큼 학생 심사위원에다 교사까지 입회해 공정하게 치러진다. 이은경 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동백 기네스가 학생들의 단조로운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이나 수요일 오후, 토요일 등을 활용해 각종 창의적 체험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동백고는 개교한지 4년 된 신생 학교다. 개교 첫 해에는 전국 최저수준의 학력을 기록할 만큼 비인기 학교였던 동백고는 현재 용인지역 최고의 인기학교로 변모했다. 양영평 교감은 “교과부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교과교실제 운영과 주요과목 수준별 수업이 효과를 거둔 덕분”이라며 “창의적 체험활동과 소풍 대신 운영 중인 교과 체험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유성 교장은 올 6월에 발족한 경기도 창의적체험활동 교육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김교장은 “내년부터 전면 실시될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미비한 상태”라며 “일선 학교에서 무턱대고 제도를 도입하기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에만 350여명의 회원 교사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현재 동백고 수준의 체험활동을 진행하는 학교는 없다. 동백고는 선도학교라 교과교실제 시행을 위해 학교 시설이 잘 갖춰진 상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체험활동을 교내에서 할 수 있지만 다른 중·고교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경기도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이현숙 장학사는 “현재 경기도 창의적체험활동 지원센터가 조직돼 초등학교에는 1000여개 프로그램에 각각 50만원씩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중·고등학교는 내년부터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교장은 “최근 일부 언론에서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들’ 등 공교육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했는데,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라며 “학부모들도 성적에만 얽매이지 않는 교육에 관심이 점차 늘고 있어 앞으로 우리 연구회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설명]황혜빈(사진 가운데)양이 ‘10분 동안 국보 많이 알아맞추기’ 부문 동백 기네스에 도전하고 있다. 동백고에는 현재 35개의 창의적 체험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