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정권 등장' 수니파 중동국들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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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총선으로 중동권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중동국가들은 수니파 정권이다. 이슬람 혁명 수출을 꾀하는 이란과 사이가 나쁘다. 이들은 이란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이 민주화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미국, 이라크 내에서 영향력이 커진 쿠르드족도 불안요소다. 이라크 자유총선의 후폭풍으로 중동 질서가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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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주변국의 걱정=요르단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이라크와 긴밀한 경제적 협력 관계였다. 그러나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 석유를 지원받지 못할 수 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 남부 시아파가 득세할 경우 국경분쟁이 또 발생할까 걱정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의 영향력 확대가 불안하다. 오만.카타르.바레인.예멘 등 시아파가 많이 사는 국가들은 벌써 시아파 단속에 나섰다. 중동의 최대 정치강국 이집트도 중동 패권을 놓고 숙적 이란과 다시 다퉈야 하는 상황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이후 혁명 수출을 적극 추진, 다른 수니파 국가들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또 많은 중동국가는 미국의 정치.사회 개혁 압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주화하지 않으면 이라크 꼴이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 초조한 터키.시리아=터키와 시리아는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의 정치력이 커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자국 정치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최대 거주지역이다. 1500만여명으로 터키 인구의 약 25%다. 90년대 쿠르드족 반군과의 기나긴 유혈충돌이 수년 전 겨우 가라앉았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총선에서 제헌의회 의석 20% 이상을 차지하고, 다민족 거주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에서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은 이라크 총선 직후 "쿠르드족이 키르쿠크를 장악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전체 인구의 10%(약 100만명)가 쿠르드족인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쿠르드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 행복한 이란=알아라비야 방송은 1일 "이라크 총선의 최대 수혜국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과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이 최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란은 반응도 하지 않는다. "이라크라는 든든한 동맹이 곧 생기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라크 총선에서 최다득표가 예상되는 '유나이티드 이라크 연맹(UIA)'은 친 이란 시아파 주도 정치연합이다. 당장 이란과 같은 신정(神政)국가가 건설되지는 않겠지만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은 확실하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알자지라, 총선보도 '완패'

미군에 밉보여 현장중계 못해 … 신생방송 알아라비야 압승

'아랍의 CNN'인 알자지라 방송이 시련을 맞았다. 이라크 총선 취재에서 경쟁사인 알아라비야에 완패를 당했다. 양사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알아라비야는 곳곳에 특파원을 파견해 투표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군과 이라크 군.경의 경호를 받으면서다. 가지 알야위르 대통령의 투표 장면도 단독 보도했다.

반면 알자지라는 르포 없이 토론 방송만 진행했다. 아나운서들은 "인터넷 웹사이트를 방문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바그다드 지국이 폐쇄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알자지라를 테러 채널이라고 비난해 왔다. 알자지라의 간판스타 타이시르 알루니 기자는 스페인에서의 테러 연루 혐의로 수감돼 있을 정도다. 임시정부는 알자지라가 저항세력의 활동을 지나치게 크게 보도하는 등 '불공정'보도를 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선 알아라비야 방송을 적극 지원했다. 수입도 짭짤했다. 이야드 알라위 총리는 알아라비야 방송을 전세내듯 자신의 '이라크민족화합당' TV 광고를 하루에도 수십 차례 내보냈다.

5000만의 시청자를 자랑하는 아랍권의 최대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10년 만에 문을 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쟁의 참혹성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중동권의 독재체제를 비판해온 알자지라에 일반인들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각국 정권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의 압박에 카타르 왕족은 알자지라를 민영화해 매각할 방침을 최근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알자지라의 국내 취재를 오래 전부터 금지해 왔다. 알자지라에 경쟁할 알아라비야 방송을 2003년 출범시킨 것도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의 오일머니였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장난감 인질?

이라크 무장단체가 지난 1일 웹사이트에 미군 군복을 입은 인질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左). 이들은 곁들인 성명에서 '72시간 안에 이라크 포로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납치한 미군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미군은 이라크 내에 실종 미군이 없다고 밝혀 사진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한편 미국의 장난감 제조업체 드래건 모델스는 웹사이트의 미군 사진이 자사가 생산하는 '코디'라는 장난감 모형과 비슷하다고 밝혔다(右). 미군 복장.장비를 본뜬 이 장난감은 쿠웨이트 내의 미군부대 판매용도로 만들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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