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 후보자 도덕성 잣대 국회서 법으로 정해 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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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8·8 개각에 따른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등 3명이 낙마했다. 검증책임론이 제기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최근 인사검증 시스템의 개선안을 내놨다. 후보자를 최종 낙점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나올 수 있는 의혹을 사전에 걸러내는 이른바 ‘약식 청문 절차’를 거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눈길을 끄는 건 인사 추천 초기 단계에서 당사자들에게 ‘자가검증 200개 항목 질문서’를 줘 답하게 하는 것이다. <6면 표 참조>

가족관계와 학력·경력은 물론 병역, 재산 형성, 전과 여부, 납세, 직무 윤리,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05년 국무위원(장관 혹은 장관급)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생긴 이래 제기됐던 여러 유형의 의혹이 200개 문항에 촘촘히 들어 있다.

청와대의 인사 개선안 마련에 가장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이 김명식(53·사진) 인사비서관이다. 김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 때인 2008년 2월부터 지금까지 2년 반 넘게 공직 인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사기획관(과거 정부에선 인사수석)이 공석인 가운데 사실상 수석의 역할을 해 온 셈이다. 그에겐 요즘 정치권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말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정두언 최고위원은 “인사비서관이 제대로 올렸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邪)가 끼어 있다”고 했고, 서병수 최고위원도 “청와대에서 장관 추천·검증하는 자리의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 측에선 특히 그를 영포(영일·포항)라인으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과 가깝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공세와 의혹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 비서관을 중앙SUNDAY가 10일 만났다. 그는 인사비서관에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여러 차례의 설득 끝에 200개 항목의 자가검증 질문서에 관해서만 답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김 비서관은 정치권의 공세에 대해 “괴롭다”면서도 “그러나 변명하거나 대응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 비서관은 매번 청문회 때마다 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공론화를 통해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도덕적 기준과 잣대를 마련해 가칭 ‘국무위원 등 주요 공직 후보자의 임용 기준에 관한 법률’ 같은 걸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법률을 만들어 대통령과 법원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는 게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니 국회가 구체적인 기준을 법률로 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위장전입의 경우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안 되지만 자녀 취학을 위한 것은 용인해준다든지, 부동산 투기의 구체적인 기준 같은 것을 아예 법률에 담자는 취지다.

김 비서관은 30여 년간 공직인사 업무로 잔뼈가 굵은 인사통이다. 1979년 행정고시(23회)에 합격,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의 전신) 급여과장→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과장·정책홍보관리관→청와대 인사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사 업무를 맡았다. 그는 “언론에서 거론한 인사 중 정말 능력 있고 국가 발전과 국익에 도움이 될 사람이 많았지만 병역 문제가 있다든지 강남에 집이 몇 채 있다든지 하는 문제로 쓰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 걸 다 빼고 나면 정말로 쓸 수 있는 인재풀이 너무 적어져 안타깝다”고 오랜 인사 검증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말했다. 또 바뀐 절차에 따라 최근 여러 명의 총리 예비후보자들에게 자가검증 질문서를 보냈는데, 자가검증 단계에서 몇몇 인사는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전했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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