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주주들 ‘넘버 1, 넘버 2’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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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뒷줄 왼쪽) 고소와 관련, 신한금융이 10일 일본 나고야 메리어트호텔에서 재일동포 대주주 모임인 ‘간친회’ 회원 대상 설명회를 열었다. 앞줄 오른쪽부터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정환기 간친회 회장, 정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뒷줄 오른쪽은 이백순 신한은행장.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엔 간단치 않았다. 신한지주의 재일동포 원로주주들이 신 사장 고소에 반발하면서 신 사장 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했다. 재일동포 사외이사 4명 중 한 사람인 정행남 아비크 대표이사가 지난 7일 라 회장을 면담하고 “신 사장 해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을 때는 사실상 해임안이 물 건너간 듯했다.

이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신한지주의 최고경영진 세 사람이 9일 일본 나고야(名古屋)를 찾아 원로주주들에게 각자의 입장을 설명한 이후부터다.

◆라 회장 측 성과 얻어=나고야 설명회에선 라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 측이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발하던 재일동포 주주들이 일단 조속한 사태 수습과 이사회 개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신한지주 관계자는 “초기엔 설명회는 물론 이사회 개최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이제 이사회도 열게 됐으니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측은 이번 나고야 설명회에 금융감독원 국장 출신인 원우종 상근감사위원과 고소를 담당한 법무법인 푸른의 정철섭 변호사를 대동했다. 이들은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준비해 주주들에게 신 사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를 설명했다. 라 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등 성의를 보인 것도 먹혔다는 분석이다. 그는 주주들 뒷자리에 앉은 신 사장, 이 행장과 달리 재일동포 주주들과 나란히 앉아 남다른 위상을 과시했다. 라 회장은 마무리 인사말에서 “하루빨리 마무리하겠다. 믿고 맡겨주시라. 격려해주시면 조기에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단기필마=이에 맞선 신 사장은 논리보다는 감성에 호소한 전략을 썼다. 변호사까지 동원한 은행 측과 달리 그는 단기필마였다. 주주들에게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동정 여론도 조성됐다.

은행 측의 정 변호사가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가 명백한 데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이는 명백한 범죄로 고소를 취소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주장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당장 한 주주가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호통을 쳤고, 정 변호사는 10분 만에 퇴장당했다. 이 과정에서 장두회 재일상공회의소 전 회장은 라 회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왜 갑자기 주주와 상의 없이 고소한 거냐”고 따지기도 했다.

신 사장은 설명회 직후 “이번 회의는 결론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설명회 자체가 다소 불리하게 돌아갔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일동포 주주 의견은=중요한 것은 곧 개최될 신한지주 이사회다. 나고야 회전(會戰)이 전초전이라면 이사회는 힘의 향방을 알 수 있는 본 게임이다. 이사회 구성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재일동포 사외이사들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느냐가 관건이다.

사외이사 4명은 각각 도쿄와 오사카·나고야를 대변하는 지역 대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개인 의견을 내기보다는 주변 주주들의 여론을 수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이들이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할 경우 국내 사외이사들을 추천한 라 회장 측이 우세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재일동포 원로주주들의 초기 합의대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신 사장을 해임하는 것은 안 된다”는 쪽의 결론을 내면 당분간 신 사장의 해임안 통과는 어려워진다.

◆나고야행의 부정적 시선=국내에선 국내 최고의 금융회사인 신한지주의 고위 경영진 3명이 나란히 나고야로 가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익명을 원한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냉정하게 재일동포 지분은 17%밖에 되지 않는데 사외이사는 네 자리나 차지하고 있다”며 “창업 공신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재일동포 주주들이 계속해서 신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지주와 신한은행 직원들도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원한 한 간부 직원은 “솔직히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함부로 나섰다가 어느 편으로 찍힐지 몰라 대부분 일상적인 일만 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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