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조용해진 이라크] 저항단체, 높은 투표율에 당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이라크 총선 후 저항세력의 폭력사태가 줄고 있다. 저항세력들이 의외로 높은 투표율에 당황했다는 분석이다. 이라크 정국이 예상보다 빨리 안정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임시정부는 이번 선거를 "테러에 대한 승리"로 선언하고, 각 종파.민족의 단합을 촉구했다. 총선 분위기를 정국으로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항세력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31일 이라크 나자프 주민이 행인들에게 음료수와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하루 전 치러진 총선이 성공리에 끝난 것을 자축하는 뜻에서다.[나자프 AFP=연합]

◆ 줄어든 폭력사태=총선 전만 해도 선거를 방해하려는 저항세력들의 공격이 거셌다. 지난달 30일 바그다드 인근에서 추락한 영국군 수송기도 저항세력의 로켓에 피격된 것으로 확인됐다. 10명의 영국군이 사망했다. 선거 당일에는 수십 곳에서 자살폭탄공격과 총격전이 있었다.

그러나 총선 후 이틀 동안 이라크는 조용했다. 서부의 알안바르주에서 미군 4명이 총격전으로 숨지고 아르빌에서 소규모 폭탄 공격이 발생해 경찰 2명이 사망한 것이 전부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선거 전 난무한 폭력.위협에도 투표율이 높자 저항세력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전략문제연구소의 사둔 둘라이미 소장은 "국민이 뽑은 과도정부가 들어서면 저항 명분이 약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시정부는 치안 안정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 저항세력=당분간은 이라크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다국적군의 점령상태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내 반점령.반미세력과 주변 이슬람권의 과격세력들에게는 이라크가 주요 전선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라크 알카에다 조직은 지난달 31일 "이라크 내 성전을 지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알카에다 지도부는 "이라크 전역에 이슬람의 깃발이 휘날릴 때까지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안사르 알순나군, 이라크 이슬람군, 알카에다 등 수니파 저항세력이 후세인 정권의 잔당인 바트당과 연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선거를 거부한 수니파가 종교적.정치적 이견을 극복하고 커다란 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는 "이라크 내 이슬람 과격세력과 민족주의 저항단체가 뭉치면 강력한 반정부 수니파 게릴라군이 창설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이라크 '태풍의 눈' 쿠르드족

"이번엔 독립을" 수니·시아파와 갈등 불 보듯

"대통령이나 총리 중 한 명은 쿠르드인이 돼야 한다." 지난달 30일 투표가 끝난 뒤 쿠르드인들은 이 같은 주장이 담긴 플래카드를 보여주며 알아라비야 방송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쿠르드족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총선을 치르면서 쿠르드족은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다. 1990년대 초 치열한 내전까지 벌였던 쿠르드애국연합(PUK)과 쿠르드민주당(KDP)이 이번 총선을 위해 제휴까지 했다. 사표(死票)를 방지해 앞으로 구성될 제헌의회에서 최대한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제헌의회가 8월까지 마련할 헌법안은 쿠르드족에게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의 유전지대 관할권과 모술지역의 쿠르드족에 대한 통제권 등 완전한 정치.경제적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느슨한 연방제가 향후 이라크의 정치체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키르쿠크의 막대한 석유수입을 바탕으로 중앙정부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달성한 뒤 향후 완전히 분리 독립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91년 걸프전쟁 이후 자치권을 얻게 된 쿠르드족의 영향력 확대노력은 끝이 없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을 공개적으로 도와 이라크 내 권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25명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에 5명을 진출시켰고 이야드 알라위 총리가 이끄는 임시정부에서도 부통령.외무장관 등의 요직을 차지했다. 특히 제헌의회가 제정하는 영구헌법에 대한 거부권도 부여받았다. 결국 쿠르드족을 배신자로 여기는 수니파 저항세력과 이번에는 통합된 이라크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시아파, 그리고 분리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 등 3자 간의 '한판 싸움'이 예정돼 있다. 주변국 터키도 쿠르드족이 키르쿠크를 장악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