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화장품 다 써봐 … 메이크업 못하는 게 고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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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47·사진) 대표의 집에서 가장 지저분한 곳은 어디일까. 서 대표가 쓰는 욕실이다. 수십 가지의 샤워용품과 화장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서 대표는 아모레퍼시픽에서 생산하는 모든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직접 다 써본다. 물론 대부분 여성용이다. 그는 “난잡한 내 욕실은 실험실이나 마찬가지”라며 “이것저것 써봐야 품질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험형 CEO’인 그에게도 선뜻 하기 어려운 게 있다. 화장이다. 서 대표는 “메이크업을 내 마음대로 못해 보는 게 고충이다. 그 부분은 여성의 의견을 겸손하게 들으려고 한다”며 웃었다.

창립 65주년을 맞은 아모레퍼시픽은 ‘실험정신’을 유달리 중시한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록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창립자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는 1930년대 개성에서 머리에 바르는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서 회장은 원료인 동백씨를 구하러 다니며 어머니를 도왔다. 질 좋은 동백나무는 남부지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열매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광복 직후 ‘태평양’을 설립했다. 이후 식물성 포마드 개발(1951년), 화장품 기술연구소 설립(54년), 한방화장품 연구 시작(64년), 인삼 사포닌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 개발(73년) 등이 모두 아모레퍼시픽에서 ‘최초’로 이뤄진 것들이다.

아모레퍼시픽이 2일 경기도 용인에 제2연구동인 ‘미지움(美智+um)’을 준공했다. 미지움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지혜의 장(um)’과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3층, 총 2만6000㎡(약 8000평) 규모에 330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게 된다.

서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연구동을 “아시아의 미를 세계에 전파하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의 과제가 세계시장에서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뷰티 부문에서 12%를 차지하는 해외 매출을 2015년까지 29%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설화수’와 ‘마몽드’를 앞장세운다는 전략이다. 이미 홍콩과 미국에 론칭한 설화수를 향후 중국과 일본 시장의 최고급 유통 채널에 단계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서 대표는 “민족별 피부 특징뿐 아니라 문화별로 다른 미의식에 대한 연구까지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대한민국 백화점의 1층은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 대부분이 외국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의 기술로 만든 제품(설화수)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2015년 글로벌 톱10으로 도약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또 “질 좋은 동백씨로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았던 아버님의 품질 철학을 잇겠다”면서 “연구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세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용인=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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