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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노숙자] 쪽방촌 쉼터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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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28일 밤 서울 영등포역 인근 노숙자 쉼터. 비좁은 방에서 80여명이 머물고 있어 누운 사람 몸을 넘지 않고는 오가기조차 힘들다. 박종근 기자

28일 저녁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의 30평짜리 노숙자 쉼터.

80여명의 노숙자가 서로 뒤엉켜 북적대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찬 노숙자들 사이로 방 안팎을 오갈 때면 사람들의 몸을 넘나들어야 했다. 매트리스와 담요가 부족한 탓에 일부 노숙자는 옷만 껴입은 채 냉기를 참아가며 '칼잠'을 청해야 했다.

서울시가 인가한 이 쉼터의 정원은 50명. 하지만 이곳에 기거하는 노숙자들은 120여명. 쉼터 운영자 문희재 목사는 "갈 곳 없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받다 보니 상황이 열악해졌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은 왜 서울역.지하철 시청역 등 공공시설을 배회할까. 노숙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용시설에 들어가더라도 비좁은 공간과 이 같은 환경 속에 벌어지는 불편을 싫어하면서 쉼터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내에 있는 노숙자 쉼터는 53곳으로 모두 2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시가 집계한 노숙자 수는 3000여명. 600여명은 길거리에서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노숙자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서울시내 11곳이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또 쉼터의 노숙자 수는 대개 수용 가능한 인원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올 1월 복지부가 내놓은 노숙자 시설 기준은 '1인당 3평(잠자리 1평 포함)'. 하지만 노숙자 사이에서 '호텔'로 불리는 영등포 '보현의 집'의 경우에도 17평짜리 방 한칸에 20명이 지내고 있다. 소규모 복지관 부설 쉼터들은 이보다 열악하다. 사무실과 화장실을 포함한 20여평 공간에 15~20명의 노숙자가 몰려 있는 게 보통이다. 좁은 방에서 서로 부대껴야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노숙자를 다시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노숙자 상담원 안수경씨는 요즘 자활 프로그램을 받겠다는 노숙자가 찾아와도 보낼 만한 쉼터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전화를 붙잡고 10여군데 쉼터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정원이 차서 받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안씨는 "최근 노숙자 숫자가 급격히 늘어 이젠 쉼터에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쉼터에 2년째 머문 노숙자 안모(43)씨는 "첫 한달 안에 쉼터를 떠나는 노숙자가 20%가 넘는다"면서 "가난하지만 마음대로 떠돌던 사람들이라 좁은 방에서 공동생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식사 등 다른 여건도 열악하다.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노숙자 1인당 한끼 식사비는 1329원에 불과하다. 외부 지원 없이는 반찬 세 가지와 국 하나 채우기도 버겁다. 한 40대 노숙자는 "서울역 주변 무료급식소의 음식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길거리 노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알코올 중독자 등을 수용하는 쉼터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술을 끊기 어려운 노숙자의 경우 일반 쉼터에선 거의 받아들이지 않아 거리생활 끝에 부랑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쉼터는 210명 규모의 성동구 비전 트레이닝센터 등 두곳에 불과하다.

6개월마다 한번씩 취업 유무와 저축 실적 등을 평가, 개선이 없을 땐 쉼터에서 퇴소시키는 쉼터의 관행에 대해서도 노숙자들의 불만이 높다. 취지는 동감하지만 요즘처럼 겨울이 돼 건설 일용직 등 일감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해 달라는 것이다.

천인성 기자, 임병철 인턴 기자(한서대 신방과 3년) <guchi@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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