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테마별 고전읽기]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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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니체는 인간을,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배우지 않고도 최선의 삶을 산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으면서도 사는 게 서툴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 짓이 대개는 제 무덤을 파는 짓이다.

지금 생명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있는 지율스님이 질타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고작 20여분을 빨리 가기 위해 멀쩡한 산 하나를 뚫고 지나가겠다는 태도. 물론 경제적 가치를 따지자면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잘 살기 위한 우리의 집착은 역설적이게도 생명과 삶에 대한 근본적 무관심과 맞닿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 삶에 대한 복수로 돌변하는 이유는 무얼까. 돈이나 잘못된 신념에 쉽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그것들을 가지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삶을 내어준다. 잘 산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자리를 꿰찬 이런 허깨비들로부터 삶을 되찾아오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되찾으려 할 때조차 서투르기 짝이 없다. 작년 불었던 '웰빙'의 열풍. 그것으로 성장한 것은 '웰빙산업'이지 행복이 아니었다. 웰빙에 대한 욕망만 있었을 뿐 그것에 대한 물음이 없었던 탓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물음은,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몇 백 배 더 소중하다. 그래서 내게 허락된 첫 지면을 에피쿠로스의 '쾌락'(오유석 옮김, 문학과지성사)을 소개하는 데 쓰기로 했다. 그는 행복을 위해 신께 기도하는 대신,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을 했던 사람이다. 신은 게으른 채로 충분하다. 삶 속에서 우리를 불안케 하는 온갖 허깨비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즐거울 수 있으며, 심지어 신의 행복에도 도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신께 불경하고, 쾌락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그를 방탕한 쾌락주의자로 몰아세웠으나, 정작 그는 방탕한 쾌락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잃은 허깨비 놀음이라고 가르쳤다. 행복해지려거든 자기 삶을 통찰해야 한다. 헛된 욕망이나 공포는 그것을 야기한 원인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누그러뜨릴 생각만 할 때 생겨난다. 위를 채워야 식탐이 사라지는 게 아니며, 적을 없애야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탐욕과 원한을 만들어내는 개인적 사회적 조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는 또한 이렇게 가르쳤다. 행복은 혼자서 달성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세네카에 따르면 그는 "현자는 자족적이므로 친구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크게 꾸짖었다.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의 유명한 정원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예, 매춘부가 함께 철학하는 곳이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삶을 사려 깊게 대하고 자기 행복을 모두의 행복 속에 찾으라. 에피쿠로스를 읽고 나서, 나는 '인간은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라는 니체의 경멸에 이런 토를 달게 되었다. 행복을 배우려는 짐승은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은가.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 + 너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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