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가격 변수 어떻게 움직일까?] 1. 환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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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올 들어 하락세가 주춤하던 환율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 기대가 확산되면서 다시 급락세로 돌아섰다. 원화 환율이 머지않아 세자릿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말까지 줄곧 떨어지던 금리는 연초 경기 회복 기대감에, 국채 발행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불안감이 가세하면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주가도 종합주가지수 1000선을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다 물가와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국제유가도 들먹거려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환율.금리.주가.국제 유가 등 4대 가격 변수가 올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전망해 본다.

27일 전 세계 외환시장의 관심은 온통 중국으로 쏠렸다.

▶ 원-달러 환율이 27일 1997년 11월 18일의 종가 1012.8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1028.70원을 기록했다.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환율 추세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고 있다.신인섭 기자

중국 재정부 주광야오 국제국장이 이날 베이징에서 열린 포럼에서 "다음달 4~5일 열릴 서방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에 진런칭 재정부장이 참석해 위안화 환율제도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미국.유럽의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시기 상조'라며 일축해온 중국 정부가 스스로 위안화 환율제도를 놓고 G7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로 인해 외환시장에선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달러당 104엔대까지 갔던 엔-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02엔대까지 밀렸다.

달러 값 하락세는 런던.뉴욕.도쿄를 지나 서울 외환시장에 이르자 더 증폭됐다. 이날 원-달러는 시작부터 1030원선을 무너뜨리며 출발했다. 개장 초 한국은행이 "환율 하락세가 과도하다"며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하락세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환율은 결국 전날보다 2.9원 떨어진 1028.7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1997년 11월 18일 1012.8원 이후 7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 위안화 평가절상될까=중국이 위안화 환율제도에 대해 선제적인 제스처를 하고 나온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적인 약달러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올 들어선 타깃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으로 좁혔다. 올 들어 엔화와 원화는 달러에 대해 강세를 유지했지만 유로화는 약세로 돌아선 게 이를 방증한다.

미국이 중국 등 아시아국을 겨냥한 이유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주로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무역에서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4000억달러가 넘었고 올해도 42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자가 늘어나면 미국 정부로선 달러를 찍어서 이를 메울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달러 값 하락요인이 된다.

그러나 중국이 급격한 위안화 평가절상을 단행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중국의 국영은행이 여전히 엄청난 부실채권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평가절상은 국영기업의 부실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국영은행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선 현재 ±0.3%인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단계적으로 넓혀 결과적으로 위안화가 소폭 평가절상되도록 하는 수순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절상 폭은 선진국이 기대하는 5% 이상보다 훨씬 작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 국내시장도 달러 공급 초과=지난해 10월 이후 많이 줄었지만 거주자 외화예금이 아직 160억달러대다. 달러 값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면 언제든지 매물로 나올 수 있는 물량이다.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도 꾸준히 외환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최근 주가가 오르면서 주춤하던 외국인 주식매수 자금의 유입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외환시장엔 악재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한 뒤 자기 나라로 송금하면 외환시장에선 달러 수요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내 주식을 사기 위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달러 공급 요인이 된다.

◆ 환율 어떻게 움직일까=단기적으로 원화환율은 중국 정부의 태도와 미국의 금리정책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는 중국이 위안화를 소폭 올리고, 미국이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경우다. 이때 원화는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원화 값이 따라 오르는 효과를 미국 금리 인상이 상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국이 위안화를 이른 시간 안에 소폭 올리되, 미국도 금리를 0.25%포인트 정도 올리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원화 환율은 완만하게 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론 위안화가 큰 폭 절상되고 미국 금리는 오르지 않을 때다. 엔화나 원화로선 최악의 상황으로 환율은 급락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둘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있다. 미국도 약달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국채를 팔아야 하는데 달러 값이 계속 떨어지면 국채를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원화환율이 완만한 하락세를 탈 것으로 본다. 다만 외환시장은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커질 경우 원화환율은 갑자기 세자릿수로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정경민.김창규 기자 <jkmo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 도움말 주신 분=우리은행 외환시장 운용팀 이정욱 과장, 농협선물 이진우 팀장, 금융연구원 박해식 연구위원, 한국은행 이광주 국제국장,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위원

*** 바로잡습니다

◆ 본지 1월 28일자 3면 '4대 가격변수 어떻게 움직이나' 환율 편에서 초반부 '재정적자가 늘어나면 미국 정부로선 달러를 찍어서 이를 메울 수밖에 없고…'란 부분과 후반부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국채를 팔아야 하는데…'란 부분이 서로 상치된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재정적자가 늘었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보다 지출을 더 많이 늘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달러가 시중에 많이 풀리게 되고, 이는 달러 값 하락 요인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내 재정적자를 메우는 것은 아닙니다. 적자만큼 국채를 발행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미국 정부가 세입을 초과해 지출한 달러를 국채 발행을 통해 환수하는 셈입니다. 국채 발행은 외환시장에서 그만큼 달러 공급을 줄이기 때문에 달러 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만 보면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 규모만큼 국채를 발행한다면 재정적자로 인한 달러 공급 증가가 국채 발행으로 인한 달러 공급 감소로 상쇄돼 달러 값은 변동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국채 발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채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를 무한정 국채 발행으로 메우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달러 공급이 늘고 이는 달러 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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