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는 이미 꽉 찼는데 … 수매 늘리면 어디 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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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1일 오후 전남 나주시 문평면의 한 농협 창고. 창고 문을 열자 벼 포대(용량 40㎏)들이 어른 키 3배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 문평농협 김한중(48)씨는 “이 창고에만도 2005~2009년산 정부 양곡 1만9000포대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문평농협은 면적 330㎡짜리 창고 6개를 가지고 있는데, 4개는 재고가 각각 1만8000~19000포대로 거의 포화상태다. 2개만 재고가 각각 4800포대와 9600포대로, 여유 공간이 있다. 김씨는 “두어 달 뒤부터 올해 수확 벼를 받아야 하는데 여유 공간이 1만4000여 포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벼 수확기가 다가오면서 정부 양곡 보관창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재고 물량만으로도 창고가 가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생산된 벼도 최대 114만t가량을 추가로 사들인다는 계획이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전남도는 최근 시·군과 농협 등에 올해 생산 벼를 보관할 창고를 추가로 계약할 것을 지시했다. 또 기존 창고에 쌓인 포대 더미를 재정리해 빈 공간을 늘리도록 했다. 공사 중인 미곡종합처리장 건조저장시설도 조기에 완공하기로 했다. 전남도 농산물유통과 이종원씨는 “창고들의 추가 수용 가능 용량이 전체 능력의 28%인 16만4000t에 그쳐 공공 비축량 매입 등이 본격화되면 보관 여력이 10만t가량 모자랄 수도 있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묵은 재고부터 서둘러 치우기로 했다. 2005년산 11만t은 9월부터 전량 빼내서 가공용으로 팔기로 했다. 물론 가격도 ㎏당 280원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나머지 재고 쌀도 가공용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특히 그동안 고구마 등으로 충당해 오던 주정 원료로 재고 쌀을 판매할 계획이다.

쌀을 보다 체계적으로 쌓는 방법도 동원된다. 경남도는 정부 양곡 창고 등에 보관 중인 2005년산 이후 벼와 수입 현미·보리 등을 정리정돈해 저장 공간을 넓히고 있다.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민간에 맡기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종률 경남도 양정담당은 “수매 물량이 많아져 위급 상황이 생기면 읍·면 단위로 일부 남아 있는 새마을창고도 계약해 임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가에 수매 약속만 하거나 먼저 돈을 지급하고, 쌀을 가져오는 것은 나중에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수단을 짜내도 올해 사들이는 분량까지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길거리에 쌀을 쌓아두는 ‘야적’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직 수확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정범구(민주당) 의원은 “농림부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정부 예상대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쌀 창고 여유 공간은 1000t 분량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보관 여력이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점도 문제다. 곡창지대인 충남은 실 보관능력이 29만5000t인 데 비해 현재 재고량은 30만7000t으로 이미 104.1%이고, 전남과 울산 등도 재고량이 비축 공간의 100%를 넘은 상태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비축 공간이 없는데 무조건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해석·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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