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국 비교문학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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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첫째는 국내에서 비교문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대회기간에 강조됐듯이 비교문학은 세계시민주의 시대에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의 새로운 종합적 사유 방식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21세기는 교환, 융합, 통섭(統攝)의 시대다. 우리의 미래는 ‘비교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 ‘비교’라는 말은 이제 인문학 연구에서 필수불가결한 개념이다.

나는 비교 작업이 차이들을 인식하고 타자에 대한 일차적인 이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 형성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제 비교의 의미는 ‘넘어서’ ‘가로질러’ ‘다(多)의’ ‘통섭’ ‘이주’의 뜻을 가진다. 이것들은 ‘비교의 문화 정치학’이며 ‘비교의 인식론적 윤리학’의 핵심이다. 특히 한국의 인문학은 그 고질병인 학문 간의 높은 벽을 허물고 융복합 시대에 알맞은 통섭의 원리로 서로 소통해야 한다.

둘째는 서구 주도의 학문과 이론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인문학을 하는 주체적 방법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동북아시아 한·중·일 3국뿐 아니라 인도의 학자들까지 끈질기게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서구문학 중심이 아닌 탈식민주주의적 제3의 공간으로서 세계문학의 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 민족문학은 비교문학을 통해 진정한 전 지구적 세계문학으로 재영토화돼야 한다. 국제비교문학대회를 흔히 문학 올림픽이나 문학의 유엔총회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셋째는 종합 인문학 방법으로서의 비교문학의 제도권화다. 불행하게도 한국 어느 대학의 학부에도 비교문학과가 없다. 세계화 시대에 비교문학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웃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문학계는 교육부의 학문정책 입안자들을 설득해 국내 대학에 비교문학과를 설치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역동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다.

3년 후 2013년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제20차 세계비교문학대회가 열린다. 아무쪼록 파리 세계대회에서는 한국의 문학과 인문학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확실하게 부상해 세계에서 한국이 새로운 문화강국으로서 면모를 일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서울 세계대회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 아닐까.

정정호 중앙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