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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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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식군데 헬렌 킴을 그냥 보낼 수 있나. 마침 날도 더우니 우리 여기서 궁상 그만 떨고 오늘 하루 태종대로 야유회나 가지. 해수욕장은 어디나 너무 북적거릴 거고….”

배우들과 함께 검토하고 있던 대본을 내던지듯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선배는 부르기 쉬운 한국식 이름이 있는데도 꼭 혜련을 영어식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것도 일종의 이국취향인지 혜련과 함께 나다니기를 좋아했다. ‘기르던 닭은 잡아먹지 않는다’는 나름의 처신 법으로 여자 단원이나 여배우들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선배에게는 별난 예외였다. 하지만 그날은 열 명이 넘는 단원과 함께 가는 것이라 꼭 그런 이국취향이 발동한 것 같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함께 지내다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정으로 벌인 송별회라는 편이 옳았다.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아직 오전이었지만 열 시를 넘긴 때라 날은 이미 찜통 같은 더위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단원들이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한 뒤 극단 사무실 문을 닫고 세 대의 택시에 나눠 탔을 때는 벌써 열한 시였다. 때아닌 교통혼잡에 짜증들을 내며 태종대 유원지에 이르자 이미 점심때가 되었고, 커다란 천막식당에서 콩국수 한 그릇씩과 불안한 여름 회로 소주 한 잔씩을 돌리자 팔월 초순의 불볕은 절정으로 타올랐다. 원래는 차게 식힌 맥주나 몇 병 들고 근처 바닷가의 시원한 그늘에서 조촐한 송별연을 대신할 작정이었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전망 따지지 않고 찾아봐도 여남은 명이 둘러앉을 그늘은 없었고, 천막식당이나 놀이용 차일을 빌려도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두 시의 불볕 더위를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그때 영도에 살아 부근의 사정을 잘 아는 단원 하나가 선배에게 건의했다.

“단장님 차라리 저 아래로 내려가 유람선이나 타는 게 어떻겠습니까? 요즘 새로 생긴 밴데, 설비가 좋고 바다로 나가면 바람도 시원해 견딜 만할 겁니다. 오륙도까지 돌아보고 오는 데 두어 시간 걸린다고 하니, 그렇게만 해도 돌아오면 이래저래 해거름이 될 겁니다. 술은 그때 다시 자리 잡고 한잔하지요.”

그 말에 선배도 별 대책이 없는지 선선히 동의했다. 하지만 피서 철이 대목이라 그랬는지, 돈 내고 유람선을 타는 일도 그리 수월치는 않았다. 거기도 피서 나온 사람들이 몰려 결코 싸지 않은 승선권을 끊고도 다시 찌는 듯한 부두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유람선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원들이 모두 배에 오르고 유람선이 십여 분 바다로 나가자 모든 일은 처음 제의한 단원의 말대로 돌아갔다. 원래의 조금 있던 바닷바람에다 날렵한 신형 유람선의 고속이 더해 선실 구석구석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거기다가 그 불볕 같은 더위 속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만히 술과 마른안주를 챙겨온 단원이 있어 취기도 끊어지지 않게 되자 이내 흥겨운 선유(船遊) 분위기까지 흘렀다.

내가 갑작스레 헬렌과 리투아니아 얘기를 하게 된 것은 그렇게 얼큰해서 오륙도 부근을 돌아보다 다시 유람선 부두로 돌아가는 뱃전에서였다. 저만치 선착장을 바라보며 배가 속도를 줄이고 있을 무렵 단원들은 모두 갑판 위에 나와 내릴 채비를 했다.

전형적인 백인 여성의 외모를 가진 혜련에게서 진한 부산 사투리를 끌어내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데 재미를 들였는지 그때까지도 선배는 혜련 곁에서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배가 무엇 때문인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줄곧 유쾌하게 맞장구를 치고 있던 혜련도 이내 입을 다물고 멀리 서쪽 바다 위로 지는 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마침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내 눈에 햇살을 받은 누른 머리칼이 가득 차오르듯 들어왔다. 내가 습관적으로 금발이라고 불러왔던 그 머릿결은 기우는 햇살에 비낀 탓인지 적갈색을 띨 만큼 짙고 탁했다.

“그러고 보니 혜련의 머리칼이 금발은 아닌 것 같네. 나는 옛날부터 무턱대고 혜련이 금발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하자 혜련이 돌아보며 별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금발의 제니 때문이겠죠. 한국 사람들 많이 그렇게 착각해요. 하지만 제 머리칼은 금발이 아니에요. 어머니 말로는 리투아니아 해안의 황톳빛이래요. 리투아니아 여자들에게 아주 흔한 머리칼이라던데요.”

나도 리투아니아가 발트해 연안이고 그래서 해안선이 발달한 나라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 해안의 모래 색깔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혜련의 머리칼 같은 황갈색 모래로 길게 펼쳐진 해안이 떠오르면서 검푸른 발트해의 물결까지 연상되어 대비되었다. 거기다가 어떤 땅의 색깔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결에 투사된다는 것도 별난 느낌으로 다가들었다.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이 살고 있는 땅 색깔을 닮는다는 게 어째 좀… 그게 유전학적으로 가능할까?”

“그건 저도 몰라요. 어릴 적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해주어 그런가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어쩌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어쨌기에?”

그러자 헬렌이 한국 여자아이들 같지 않게 어깨까지 들썩하며 풀썩 웃었다.

“지금 이 뱃전에서 제게 리투아니아 역사를 강의하란 거예요?”

그때 마침 가벼운 충격과 함께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그 바람에 까닭 없이 서둘러 내리는 단원들과 함께 내리느라 이야기는 중단되었으나, 새삼 리투아니아에 대한 호기심은 쉬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게 다시 여름 밤까지 이어진 포장마차의 술자리에서 틈나는 대로 리투아니아와 모계(母系)의 이산 역사를 혜련에게 묻게 만들었다. 마침 자리도 떠나는 혜련을 위한 것인지라 아무도 그녀가 대화의 중심이 되는 걸 방해하지 않아 우리는 그녀로부터 리투아니아에 대해 그 무렵의 상식을 뛰어넘는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다시 이십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였대요. 모스크바, 우크라이나까지 차지한 적이 있는.”

“리투아니아 왕이 폴란드 국왕을 겸한 적도 있었지요. 폴란드와 연방을 이루었다가 배신당해 엄청난 낭패를 본 적도 있고.”

“그래도 자기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리투아니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이죠. 독립성이 강하고.”

“러시아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일 거예요. 오래 러시아 속국으로 지냈지만 종교는 동방정교가 아닌 로마 가톨릭이란 것도 별나죠.”

그러다가 근대사로 들어가면서는 무엇이든 대범하게 한 혜련 같지 않게 제법 비장한 감상까지 내비쳤다.

“리투아니아의 근대 역사는 상당 부분 한때의 연방국이었던 폴란드의 비극과 연관되어 있어요. 17세기 폴란드가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될 때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에 점령되어 그 속국이 되었지요.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때는 러시아 침입의 통로가 됨으로써 프랑스, 러시아 양쪽 군대에 의해 쑥밭이 되었다더군요. 그 뒤 리투아니아는 죽 러시아의 속국으로 있다가 1차대전 때 독일에 점령되면서 다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지만, 오래잖아 독일이 패전하면서 리투아니아는 다시 독립을 누리게 되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난데없이 폴란드군에 점령당했다가, 1차대전 직전 폴란드가 다시 소비에트 러시아와 독일에 분할되었을 때는 소련에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기구하게도 이듬해 독일과 소련이 싸우게 되자 리투아니아는 독일에 점령당해 2차대전이 끝나서야 소련의 점령 아래 들게 되지요. 그 뒤 리투아니아는 발트 삼국 가운데 하나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불행과 비참의 나라입니다. 민족과 언어를 따로 가지고 국가를 세운 지 600년이 넘도록 독립국으로보다는 속방이나 점령지로 더 많은 세월을 보낸 나라가 우리 리투아니아예요.”

그때 헬렌은 대강 그렇게 리투아니아의 근대사를 정리했는데, 아마도 나름으로는 리투아니아 역사를 깊이 있게 살펴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은 그녀가 ‘우리 리투아니아’라고 말할 때의 묘한 떨림이다. 거기서 받은 어떤 감동 때문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다시 그녀의 모계가 리투아니아를 떠나게 된 경위까지 캐묻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어차피 여남은 명의 취한 단원이 중구난방 떠들고 있는 그때의 술자리에서는 듣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문득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이고, 어지간히 취한 나도 이내 집중력을 잃어 물음을 되풀이 이어가지 못했다. 그 바람에 대답을 들은 것은 며칠 뒤 한 번 더 맨정신으로 그녀와 마주 앉게 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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