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경영진, 작년 10월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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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의 '취업 장사'채용 비리와 인사.노무담당자들의 금품수수를 지난해 10월 당시 경영진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검찰이 지난해 말 수사에 착수하자 뒤늦게 당사자들을 문책했다. 이는 '채용 비리를 지난해 말께 알아 당사자들을 문책했다'는 그간의 회사 측 해명과 배치된다.

현대.기아차 노무담당 및 감사실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 광주공장 채용 비리와 관련해 홈페이지 등에 투서가 나돌고, 9월부터는 경찰이 내사에 들어가면서 자체 감사를 실시했다"며 "이때 경영진이 노조 간부의 채용 비리 및 인사 관련 직원의 금품 수수 정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 결과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금품수수의 경우 계좌추적권이 없어 더 이상 조사를 하지 못했다"며 "결국 10월 말께 해당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는 선에서 일단 종결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은 기아차 소하리 본부 노조가 회사 측에 '채용 할당'에 관한 항의 공문을 보낸 시점이다.

그러나 기아차 경영진은 '취업 장사'가 지난해 말 지역 언론에 보도되고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자 광주 공장 인사담당 이사대우와 노사.인력관리팀 관리자를 지난해 12월 30일자로 뒤늦게 면직시키고 퇴사 조치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이 사건의 최종 책임을 지고 김기철 광주 공장장을 면직시켰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기아차 광주공장의 입사 지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지원 경로 '사내추천.사외추천.기타' 를 묻는 항목이다. 작성 요령에는 '해당 항목에 '○'표를 하라'고 돼 있으나 상당수 지원자가 추천자인 노조 간부나 직원들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이처럼 기아차 경영진이 문제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본격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은 것은 노조의 강력한 파업권을 의식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2001년 파업 때 노조와 협상하면서 원칙을 고수하다 일부 노조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의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하려고 해도 '공장이 서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경영진이 노조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노조 눈치보기는 2002년 현대차 파업 이후 심해졌다는 게 기아차 관계자의 말이다.

회사 관계자는 "그 후 공장장이나 사업본부장들 사이에선 '노조 문제는 덮어두는 게 좋다'는 인식이 퍼졌고,'공장장 발령을 노조가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본지가 입수한 기아차 광주공장 '입사 지원서'(사진)에는 지원 경로를 묻는 항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원서 작성요령에는 '사내추천.사외추천.기타' 가운데 해당 항목에 '○'표를 하라고 돼 있으나 상당수 지원자가 추천한 노조 간부나 직원들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2001년까지는 추천인을 직접 기명하는 난이 있었는데 이것을 개선해 이름은 쓰지 말도록 했다"며 "하지만 지원 경로에 '○'표를 하라는 지원설명서를 읽어보지 않고 추천인의 이름을 그대로 쓴 지원자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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