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쪽방촌 투자, 위장전입 … 공허해진 ‘공정한 사회’ 약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8·8 개각에 따른 국회 인사청문회로 세상이 시끄럽다. 청문회장마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병역기피 같은 의혹들이 쏟아졌다. 후보자들은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를 연발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들의 이런 도덕적 흠결을 미리 알았을까. 24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장에서 답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거론되는 나에 대한 모든 문제가 청와대 검증팀에 보고됐고, 나도 솔직히 얘기했다”.

만약 이런 문제점을 모두 파악한 청와대 검증팀이 대통령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있으나마나인 셈이기 때문이다. 검증팀이 보고를 했고,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내정을 강행했다면 더 답답한 일이다. 청렴함에 앞서 업무 장악력과 추진력 같은 ‘일머리’를 먼저 본다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이 여전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그런 스타일은 정치권에서 ‘접시론 인사’로 불린다. “일하다 보면 접시도 깨고, 손도 벤다”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열심히 살다보면 도덕적 흠이야 좀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 ‘중요한 건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느슨한 도덕적 잣대로 인사를 했다가 여러 차례 ‘여론’이라는 불에 뎄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개각 발표 일주일 만인 8·15 광복절 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까지 했다. 경축사를 요약하면 공정한 사회는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얻고, 그 기회를 이용해 성공한 사람은 사회적 책임을 마땅히 지는 사회’다. 또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 공동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있으면, 대통령의 이런 약속이 ‘공허한 메시지’였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자녀에게 남들보다 좋은 교육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건 승자 독식을 위한 행동이다. 수억원 재산가인 공직자가 빈민들의 쪽방에 ‘투자’를 하는 것도 공정한 사회에서 벌어질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위장전입,세금 탈루 등은 ‘친서민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