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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표·전역증·봉급표 … ‘남자의 일생’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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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달 말 정년 퇴임하는 연세대 의대 유승흠(65·사진) 교수가 자신의 삶을 담은 자서전 『내 삶의 편린들』(한국의학원)을 펴냈다. 부제는 자신의 호를 딴 ‘정암 실록’. 유 교수는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큰조카다.

정암실록에는 여느 자서전과 다른 점이 많다. 입시 수험표에서부터 군대 전역증서, 20년가량 모은 A4용지 80쪽 가량의 연하장과 카드까지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기록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유 교수는 “한 남자 일생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경기중학과 경기고교, 예비고사, 연세대 입학시험, 의사국가시험과 연세대 석·박사시험 등 각종 시험 때 썼던 수험표도 들어 있다. 1964년 연세대 의대에 합격하자 유일한 박사가 유 교수와 동생을 서울의 한 호텔로 불러 “엿 사먹지 말라”며 유한양행 주식 500주(액면가 각 500원)를 줬다고 회고했다. 당시 “의사가 돈 벌려고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유 교수는 아직까지 그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63년 받은 서울특별시민증(지금의 주민등록증), 첫 여권(65년)과 가족여권(78년), 75년 서울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청약서, 병역수첩과 전역증서(77년) 등 공적인 기록도 담겨 있다. 유일한 박사가 선물한 청진기, 본인의 결혼식 청첩장(71년), 서울 역촌동 단독주택에 달았던 문패, 사촌누나에게 빌린 돈을 갚은 기록(85년) 등에서는 개인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

봉급표도 빠지지 않는다. 70년 연세대 의대 조교가 되면서 월급을 처음 받았는데 당시 2만1000원에서 세금을 제하고 1만9591원을 받은 걸로 돼 있다. 당시 조교 시절 예방의학교실의 비용 정산서, 주임교수 때 들여놨던 애플컴퓨터 구입 영수증도 덧붙였다. 본인의 각종 저서와 강의 교재, 논문 초록과 정부 용역 보고서, 신문 칼럼,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 후원 안내문, 각종 기부금 영수증과 동판, 그리고 18가지의 본인 명함도 담았다.

유 교수는 “어릴 때부터 기록의 중요성을 배웠고 이를 실천했다”면서 “정년 퇴직을 맞아 특색 있게 일생을 정리해보자는 뜻에서 실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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