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길이와 나는 곧 어두워지기 시작한 국도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이차선의 비포장 국도 양 옆에는 포플러가 거꾸로 박아 놓은 빗자루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어쩌다가 밤길에 마주치는 시골사람들에게 수첩의 지도에 나온 지명을 물으면 으레 팔 한번 휘저어 보이면서 '바로 조오기'라고 대답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오십리 길을 걸었다. 윗옷은 그래도 우비 때문에 젖지 않았지만 바지 아래로는 속옷까지 젖어버렸다. 광길이의 낡은 군화는 그날 드디어 뒤축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걸었다. 국도변의 가난하고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면 그 어슴프레한 호롱불 빛을 따라 걸어들어가 아무데나 짚더미 위에라도 쓰러져 버리고 싶었다. 나는 나중에 고리키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내 젊었을 적의 남도 방랑을 떠올리고 그때에 길에서 만났던 집의 갖가지 잠자리들과 낯선 사람들을 생각했다.
김덕웅이는 당시에 얼굴이 하얗고 키도 작은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농담을 하면 곧 귀부터 빨개졌다. 그의 집에 한밤중에 들이닥쳤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고 우선 늦은 밥을 지어 한상 차려 내오던 너그러운 식구들이 생각난다. 우리가 젖은 양말을 벗자 정말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일본식의 그 집 마루에 퍼졌다. 이튿날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는데도 -가만 있자, 비빔밥을 먹었든가- 아무런 기억이 없고 아마도 그가 우리를 역까지 바래다 주었을 터인데도 어째서인지 머릿속에는 그가 담장 너머로 창백한 얼굴을 내밀고 웃었던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