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전문가' 광해군]明에 예의 지키되 國益 우선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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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명기(명지대·한국사)교수는 저서 『광해군』(역사비평사)을 통해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광해군과 그의 시대가 적어도 외교정책에 관한 한 오늘을 되새겨볼 거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흔히 '폭군''패륜아''패배자'로 알려진 광해군에게서 한교수는 '외교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읽어낸다.

광해군이 집권한 17세기 초반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조선사회가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치유할 틈도 주지 않고 복잡하게 전개됐다. 만주 여진족이 세운 후금(後金·후에 청나라로 국호 변경)의 누르하치가 만주를 넘어 명나라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노회한 명나라와 사나운 후금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광해군은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탁월한 중립 외교를 펼쳤다"고 한교수는 진단한다.

"명에 지켜야할 기본적 예의는 지키지만 조선의 존망 여부까지 걸어야 하는 요구는 거부했다. 후금이 오랑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다독거려 침략을 막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평화의 시간 동안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실력을 배양했다"는 것이다.

한교수는 "광해군을 비판하며 쫓아낸 인조반정의 공신들도 기본적으로 그의 외교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광해군 이후 명·청 교체기를 꿰뚫는 현명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란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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