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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왈순아지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왈순아지매'가 현역에서 은퇴한다. 이로써 한국 신문 특유의 네 칸 만화를 개척한 3대 주인공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1909년 창간된 '대한민보'에 연재된 이도영의 시사만화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신문시사만화는 안석주·김규택·김용환을 거친 이후 1950∼60년대 김성환·안의섭·정운경·박기정·윤영옥 등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들은 서슬이 시퍼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누구나 한번쯤 정보부에 끌려가는 필화를 겪었고, 때론 상주하는 기관원에 의해 만화의 내용을 고쳐야만 했던 날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굵은 맥을 형성했던 시사만화의 3대 주인공은 모두 55년에 등장했다. '고바우 영감'(김성환)과 '두꺼비'(안의섭)가 먼저 나왔고 바로 이어 '왈순아지매'가 월간 『여원』을 통해 데뷔했다. '왈순아지매'가 다른 두 주인공에 비해 신선했던 것은 사회적 약자인 '식모(가정부)'였기 때문이다.

점차 식모라는 직업이 사라지면서 아지매도 자연스럽게 안방마님으로 변했지만, 어쨌든 출발 당시 '식모' 아지매는 코주부 '영감'이나 고바우 '영감'처럼 성인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며 훈계하듯 존재하는 시사만화 캐릭터들과 분명히 차별화됐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정운경 화백은 시사만화만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발자국을 남겼다.

특히 아동만화, 그 중에서도 빼어난 동물만화를 그린 작가다. 60년대 신문에 실린 '두돌이''깜북이''또복이'는 귀여운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캐릭터 만화.

또한 '진진돌이'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펼치는 전쟁만화다. 이 같은 鄭화백의 작품들은 차형의 '동물전쟁', 김삼의 '강가딘'과 함께 우리 만화사에 그리 많지 않은 동물만화로 평가받고 있다.

鄭화백은 동물만화의 동심과 함께 진한 성적 상상력을 담은 성인만화 분야에서도 개척자로 평가된다. 주간중앙·주간경향 등 주간지에 연재된 '가불도사'는 박수동의 '고인돌',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와 함께 70∼80년대를 풍미한 캐릭터 중심의 성인만화로 꼽힌다.

그래서 '왈순아지매'의 퇴장은 단순히 한 만화 캐릭터가 사라진다는 이상의 큰 아쉬움을 남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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