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입당신청서까지 여당 당원 확보전 혼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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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의 당원 게시판에 '동지 여러분, 열린우리당 경사 났습니다'란 글이 올라왔다.

이 속엔 "3년 전에 작고하신 분께서 다시 살아오셨는지 입당원서를 쓰고 다시 무덤으로 가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 지난달 광주시당에 수년 전 사망한 사람의 입당 원서가 제출된 것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당 관계자는 21일 "입당원서가 신청되긴 했지만 본인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가입자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접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반 시.군.구의 당 책임자인 당원협의회장 선거가 과열.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명의로 된 입당 원서가 출현하는가 하면 한 사람이 수십장의 원서를 광역시.도 당에 접수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비 대납과 동원 시비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전국 234개 지역에서 당원협의회장을 뽑는다. 이번 주말까지 60% 정도의 지역에서 선거가 완료될 예정이다.

?"동원 당원 일색"=최근 지역구 당원협의회장 선거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했던 한 초선 의원이 전한 실상.

"지역에 가보니 수천명의 당원이 후보에 따라 딱 반으로 갈려 대립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오려는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모은 당원이었다. 자발적인 기간당원으로 보기 어렵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축사만 하고 투표장을 급히 떠났다."

이 얘기를 들은 다른 초선 의원은 "우리 지역구는 불과 몇 표 차이로 당원협의회장 당락이 갈렸다. 선거가 끝나고 벌어질 지구당 내 대립.갈등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앙당에 보고된 혼탁 양상은 더 심각하다. 경남 김해시와 거제시에선 선거 과정에서 금품살포와 선거 절차상의 문제가 각각 제기돼 재선거 결정까지 내려졌다.

광주 광산 등 4~5개 지역도 후보 간 갈등 등의 이유로 당선자를 가리지 못해 중앙당 분쟁심의위원회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다른 사람이 당비를 내준 당원은 전체의 5~10% 될 것으로 추정한다"며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가려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원협의회장 선거는 원래 기간당원 모집 만료일로 예정된 2월 1일을 넘겨 중순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왜 그런가=선거가 혼탁해진 원인은 무엇보다 당원협의회장의 위상이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당원협의회는 기초자치단체별로 그 아래 읍.면.동에 흩어진 당원들이 만드는 풀뿌리 지방당 조직이다. 이 조직에 소속된 당원들은 자기 돈(당비 매월 2000원)을 내는 데다 당원협의회장을 직선으로 선출하고, 읍.면.동별로 대의원을 뽑는 권한을 갖고 있어 당원협의회의 힘이 과거보다 훨씬 세졌다.

여기에 4월 2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중앙 차원의 계파별 당원 모으기 경쟁도 치열하다.

또 재.보선을 염두에 둔 예비 후보들이 세 불리기를 하는 것도 과열의 원인이다. 한 당직자는 "좋은 취지로 기간당원제를 시작했지만 과거 지구당제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오히려 기간당원제가 '당심'과 '민심'을 더욱 유리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신용호.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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