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700자 읽기]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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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원제 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
모리스 클라인 지음, 박영훈 옮김, 경문사, 664쪽, 3만3000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211년 고향 시라쿠사가 로마군에게 함락될 때 땅바닥에 도형을 그려놓고 기하학 연구에 몰두하다가 점령군에게 살해됐다. 문명과 야만을 대비할 때 자주 쓰는 일화다.

저자는 이 사건을 색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이론 수학에 관심을 쏟은 그리스는 창조적이며 풍요로운 정신문명을 이룬 반면, 이론 수학을 몽상적이라고 비웃고 토목공사를 위한 실용 수학만 챙긴 로마는 모방적이며 정신적으로 빈곤했음을 대비하는 사례로 본다.

그러면서 저자는 "수학은 문명의 성장 퇴조와 함께 자라고 소멸하는, 살아있는 식물"이라고 강조한다. 서구에서 수학은 철학.물리학.종교.예술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발전해왔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런 주장이 '참'임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증거를 담았다. 수학이 서구문명의 동력이었음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의도가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서구 문화 속에 숨은 '수학 코드' 를 찾는 즐거움도 준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 원근법이 적용된 것은 수학적으로 삼차원인 실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의 실제 질서를 바탕으로 이성과 합리를 추구하는 것이 수학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 정신은 뉴튼으로 상징되는 서구 근대사상을 형성하는 초석이 됐다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뉴욕대학 쿠란트 수학연구소의 명예교수다. 1953년 초판이 나온 책이지만 수학이라는 메스로 서구문명을 해부한 시도는 지금도 신선해 보인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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