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남이 하면 싫은 일은 그대도 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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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덥습니다. 해마다 오는 더위인데도 늘 새롭게 덥습니다. 피할 수 없거든 즐겨야 합니다. 요맘때 더위를 묘사한 명문장 하나 감상해보십시오.

“괴롭던 장마가 즘즘하더니 찌는 듯한 더위가 또다시 괴롭게 한다. 매미는 덥다 못하여 ‘맵다’고 운다. 울어도 사정 없는 더위는 처서를 앞두고 힘껏 기세를 돋운다. (···) 이 더위는 부자의 별장에도 간다. 거지의 토굴에도 간다. 선풍기 놓인 바둑판에도 가거니와 풀무질하는 대장간에도 간다. 분 바른 얼굴에도 내리쪼이고 땀 흘리는 등허리에도 다름없이 내리쪼인다. 그러나 받는 분수가 다 각각 다르고 겪는 고통이 제각기 다르다. 공평무사한 하늘은 높은 데나 낮은 데나 넓은 데나 좁은 데나 어디나 할 것 없이 다름없는 똑같은 더위를 다름없이 똑같이 퍼붓는다. 그러나 고르지 못한 땅 세상에서는 하늘의 뜻을 모르기도 하려니와 뜻대로 받지도 아니한다. 이렇게 되어야 이 괴로운 세상이 더욱 재미나고 이 괴로운 더위가 더욱 맛나는 모양이다.”

일제 때 필명을 날렸던 언론인 설의식 선생의 수필입니다.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 때 편집국장을 하던 분이지요. 짜증나는 더위를 어쩜 그리 정겹고 맛깔 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더위나 쫓자고 대선배를 수고롭게 한 게 아닙니다. 가뜩이나 더운데 더 열 받게 만드는 일들이 있어서 하는 얘기지요. 이 땅의 높으신 나리들 인사 때마다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국민들 감수(減壽)하게 만드는 일 말입니다.

이제는 위장전입 정도는 흠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저 “소리(sorry)” 한마디면 그만입니다. 대법관이 되겠다는 양반마저 그러니 말 다했습니다. 예전에 그걸로 총리 낙마하신 분만 딱할 뿐입니다. 이 땅에서 잘나가던 분들이 더 잘 먹고 잘살겠다고, 좋은 건 다 갖겠다고, 공평무사한 하늘이 다름없이 퍼붓는 더위 속에서 혼자만 시원하겠다고, 불법 탈법 저지르고, 약은 짓 얌체 짓 가리지 않았던 걸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러고도 치부 드러날 것 뻔히 알면서 감투 욕심 못 버리는 걸 보면 연민의 정이 들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쪽 팔림’은 잠깐이요, 이익은 영원하다!”는 거죠.

정말 그렇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말고요. 천년 만년 쓸 수 있는 감투가 아닙니다. 발가벗겨진 치부는 영원하고요.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누구를 검색하면 10년 전, 20년 전 기사가 줄줄이 따라다닙니다. 한 번 실수가 주홍글씨가 돼 버릴 수 있는 겁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무슨 감투 후보자가 과거에 못된 짓을 했었다고 들으면 열 받으시죠? ‘고르지 못한 땅 세상’에 사는 게 욕 나오시죠? 그 마음 잘 간수하세요. 쉬이 잃어버리는 보물입니다. 그 후보자도 여러분 나이 때는 마찬가지로 열 받았을 겁니다. 살다가 잃어버린 겁니다. 눈앞 욕심에 버렸을 수도 있고요.

그 보물을 잃지 않는 비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실 비법도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성현이 한 얘깁니다. 성경에까지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마태복음 7장 12절은 말하지요. 공자도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고 했습니다. 불교의 보살행 중에는 자리이타(自利利他)행이란 게 있습니다. 자기에게도 이롭지만 우선 남에게 이로워야 한다는 말이지요.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한 얘깁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알기 쉽게 정리합니다. 들어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변명할 수 없도록, 아무리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우리의 감투 후보자들도 변명할 수 없겠지요? 무슨 일을 할 때는 늘 생각하십시오. 남이 그 일을 하면 내 기분이 어떨지를 말입니다. 내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해서는 안 됩니다. 남도 그만큼 기분 나쁠 테니까요. 홉스는 더 무섭게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법을 지킬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이 있는데도,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구하는 것이며 폭력에 의해 자신이 파괴되는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찌는 더위 속에서 혼자 시원하겠다고 남들 열 받게 하다간 뼈도 못 추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그랬듯, 이런 인사가 계속되다가는 이 정권의 앞날도 불 보듯 훤하다는 얘기지요. 이래저래 더운 여름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