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관광산업 살리기 나선 제주:'한국관광 1번지' 명예회복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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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라산이 전하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제주섬 탄생 신화의 주역이자 거대 여신인 '설문 대할망'은 5백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흉년이 들어 그 아들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헤매다녔고, 자식들이 나간 사이 어머니는 죽솥에 몸을 던졌다. 아들들은 그것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여느 때보다 맛있는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돌아온 막내동생은 죽을 먹으려다 어머니의 뼈를 찾아냈다. 형제들은 '어머니'를 부르며 슬피 울다 한라산 영실계곡 바위가 됐다. 우리가 지금 제주를 지키는 '오백장군'이라 부르는 바위는 그렇게 생겨났다."(민속학자 故 김영돈 정리)

화산폭발로 수백만년 전 탄생한 화산섬 제주도-.

돌·바람·여자가 많아 삼다(三多)의 고장으로 불리는 국제자유도시 제주도가 새로운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는 제주의 돌(濟州石)들을 집대성해 글로벌 시대 '한국관광의 1번지'로 거듭나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제주문화의 산실, 닻 올랐다=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산 119-.

1백만평의 땅은 이제 국제자유도시 제주도의 선봉장을 자임하고 새로운 신화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이 그것이다.

2020년까지 1천8백52억원이 투자되는 대역사(大役事)다. 이미 1백17억원이 들어갔다.

1만4천여점 제주의 돌들이 지난해 3개월동안 5t 트럭 3백여대에 나뉘어 사업현장에 마련된 수장고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본격 사업에 들어간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사업은 2005년까지 2백78억원이 투자돼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 개인사업자가 아닌 북제주군이 사업 주체로 나서고 있고, 각종 단체가 다양한 부문에서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업부지 1백만평은 대부분 북제주군 소유 군유지다.

'설문 대할망'의 와상(臥像)을 형상화한 길이 3백여m의 초대형 전시관이 들어서는 등 규모와 설계면에서 '제주적' 특징을 최대한 살렸다. 30만평이 2005년 말 우선 내·외국인 탐방객과 관광객을 맞을 예정이며 이후 벌어들일 수입은 2020년까지 조성될 '2단계 매머드 테마공원'에 계속 재투자된다.

◇초일류 세계적 테마공원 꿈꾼다=제주돌문화공원의 지향점은 한마디로 '가장 제주다운 매머드급 테마공원'으로 모아진다. 제주사람들은 그 해결책을 '제주의 돌'에서 찾았다. 1백만평의 매머드 단지에 돌, 그것도 자연석 만으로 공원이 조성된 사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유례없는 자연석 테마공원이 우리나라에 생기는 것이다.

'설문 대할망'의 신화도 건물의 기본배치에서부터 제주의 자연석으로 꾸며진다.

수십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제주 곳곳의 화산석이 제주돌문화공원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지질 교과서'와도 같은 그 돌들은 어이없게도 각종 공사현장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내팽개쳐졌던 것들이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들어설 돌 자원은 이미 1만4천여점이 확보됐다. 제주의 화산활동을 입증하고, 제주의 민속양식을 규명하며, 선사문화까지 밝혀줄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같은 사실을 밝혀주기 위해 내년 중 제주돌의 특성을 학술적으로 체계화할 '제주화산연구소'가 공원 안에 설립된다. 국내·외 3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손인석(孫仁錫·화산지질학 박사)제주도동굴연구소장은 "전시될 암석 등은 지구의 역사를 설명해 줄 대단히 소중한 자료들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고 말한다. 1단계 사업이 끝나면 제주의 흙·나무·쇠·물이 어우러진 '제주의 뿌리'공원을 조성해 세계관광시장을 향해 재도약한다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기대 크지만 갈 길 남았다=제주돌문화공원의 또 다른 특징은 사업부지(1백만평)가운데 80만평은 보존녹지로 남겨둔다는 데 있다. 주 전시관인 돌박물관은 1989년부터 10년간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했던 장소를 택했다. 그것도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4개의 '오름'(기생화산)과의 경관 친화적인 방법을 채택해 돌출형 건물은 가급적 피하고 지하로 파들어간 형태의 건물들이 건립 중이다.

'환경친화'와 '제주문화 원형고수'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이제는 제주돌문화공원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린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상배 조사부장은 "제주적인 원형의 붕괴와 자연의 파괴를 동반하는 개발방식이 아닌 새로운 개발 모델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재호(宋在祜·관광정책학)제주대 교수는 "제주의 문화·환경자원을 관광에 접목시키려는 북제주군 등 자치단체의 구상은 관광개발 효과의 상승이 오히려 문화자원의 지속·보존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돌문화공원의 미래가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총 투자비 가운데 국비가 5백55억원인 반면, 제주도비 2백77억원, 북제주군비 9백88억원 등으로 제주도 내에서 1천3백억원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 특히 기초단체인 북제주군이 2020년까지 장기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췄는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신철주(申喆宙)북제주군수는 "'한국관광의 전진기지'를 새로운 차원에서 구축한다는 정부의 의지와 도내 자치단체들의 적극적 지원을 이끌어내면 초일류 문화공원은 충분히 조성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co.kr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1백만평의 땅에 조성 중인 제주돌문화공원 사업현장. 쓰레기 매립장 부지에 조성 중인 주전시관은 주변 기생화산과의 경관을 고려, 지하로 파들어가는 공법으로 진행 중이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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