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위기, 정부 적극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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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핵 문제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래서 어떤 식의 해결이든 우리 목소리가 반영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의사가 표명된 이후에도 우리 정부나 대선 후보들에게서 신뢰성 있는 입장이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또 북한의 어떤 조치에도 동요하지 않는 국민의 안보 불감증 역시 큰 걱정이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한·미·일 3국 정상이 누차 합의한 평화적 해법이 우방 간에 구체적 대안에 관한 논의 없이 외교적 수사(修辭)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불안감을 더해준다. 당장 마땅한 해법이 없으니 시간을 갖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북한의 우방을 동원해 외교적 압박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것이 평화적 해결의 골자인 듯싶다.

또 대북 포용으로 일관했던 현 정부가 임기말 북측에 야박한 압력책을 쓸 의사도 없고, 정작 북핵 개발을 포기시킬 만한 현실적 대안도 없어 외교 수사에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불안은 애초 지난 10월 초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이후 두달이 넘도록 미국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그들의 핵 개발 계획의 정당성만을 앞세워 위기를 고조시킨 데서 비롯된다. 또 남북한과 미국 3자 간에 서로의 입장과 전략을 이해하는 '코드'읽기의 한계에 현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있다. 북이 미국의 달라진 대북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미국 또한 북의 본심을 읽지 못할 때 의외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북·미 간에, 또 적절한 단계에서 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를 촉구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그러자면 한·미 간 북핵 공동 대응이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또 북한의 핵 개발에 무심한 우리의 근거없는 자신감도 심각한 문제다. 좋든 싫든 우리 안보의 한 기둥이 되고 있는 한·미동맹을 반미(反美)로써 몰아세우는 자세는 북한의 현실인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김대중 정부는 현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내실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대북 및 대미관계에서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현 정부에 주어진 마지막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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