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핵 외교적 해법은 무얼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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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과 함께 부시 2기 정부가 출범했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한 건 전통보수 자유주의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고, 신자유주의의 추구를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입장은 국내외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확장시키겠다는 의도다. 자유민주주의의 척도는 선거에 경쟁과 참여가 존재하는지와 자유에 기초한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지에 달려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콘돌리자 라이스 신임 국무장관은 북한을 독재국가로 규정했다.

부시 1기 정부의 외교노선이 무력을 통한 악의 축 제거였다면 2기 정부의 노선은 외교력에 의한 민주주의 신장과 독재국가의 제거 또는 체제 전환이다. 1기 중에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2기 중에는 커다란 전쟁이 새롭게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한반도 문제는 부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아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테러 집단에 매각하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핵 문제를 서둘러 해결할 필요가 없다. 북핵 문제에 더 심각한 쪽은 중국과 일본이다. 북한이 핵폭탄을 보유하면 일본.한국.대만이 핵 보유를 향해 움직일 수 있고, 이런 사태를 중국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고 핵 비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입장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만한 능력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반도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19세기 말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주변 강대국들 간에 수차례의 전쟁을 통해 현재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고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권에 있다. 주변 강대국들에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자신들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 있는 북한을 무력 공격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외교협상을 통해 해결하도록 추진되고 있다. 3차 6자회담에서 제시된 단계별 협상방안이 수정돼 4차 회담에서 좀더 포괄적인 제안이 나올 수 있다.

미국에 북한은 핵을 개발하는 테러지원국이고 악의 축이고 독재국가이고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불량 국가다. 북한이 붕괴되기를 바라면서 미국이 방치한 사이에 북한은 6~7개의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재처리했다는 케리 민주당 후보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더 이상 북핵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 한국계 빅터 차 교수를 국가안보회의(NSC)에 채용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의사가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6자회담을 통해 중국.일본.한국이 북한과 협상해 해결하라는 것이고 미국은 거시적으로 감찰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자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북한인권법을 통해 탈북자를 지원하고 북한의 붕괴와 체제 전환을 기다리는 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경제 제재를 위한 유엔 결의를 유도할 수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에 북한은 투자가치가 없는 지역인 반면, 남한은 매력있는 투자 상대국이며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하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북한이나 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북핵 문제와 더불어 미국에 중대한 문제는 남한이 북한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중국과의 교역 증대를 통해 통일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본도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에 의해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묵인하고, 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분단하고,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국은 책임의식을 갖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한국민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 통일로 나아가는 한반도가 어느 편이 될 것인지는 주변 강대국에 최대의 관심사다. 한반도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에 등거리외교를 취하는 전략적 중립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