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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성민제, 조연에서 주연으로 화려한 더블베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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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그러던 중 드디어 외국에서 승전보가 전해졌다. 2006년 독일 슈페르거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러시아 쿠세비츠키 국제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사람들은 ‘그랜드 슬램’을 기대했다. 세계 3대 더블베이스 콩쿠르 중 뮌헨 콩쿠르만을 남기게 됐기 때문이다.

세계적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내놓은 음반 또한 더블베이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어렵기로 유명한 ‘왕벌의 비행’과 ‘치고이네르바이젠’ 등은 그의 음악적 기교를 뽐내는 도구로 쓰였다. 이처럼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던 악기를 날렵한 독주 악기로 끌어올린 성민제는 현재 독일 뮌헨에서 또 다른 비상을 준비 중이다. 15㎏의 악기를 매일같이 끌어안고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은 뭘까.

성민제는 청소년기를 고속으로 통과했다. 선화예중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했다. 졸업 후 독일 뮌헨 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 과정은 내년 끝난다. 대학교를 두 번 다니고도 스무 살이다.

콩쿠르 입상도 빨리 했다. 첫 세계 대회를 제패했을 때 16세였다. 내친 김에 17세에 두 번째 콩쿠르를 따냈다.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덩치 큰 악기로 어려운 곡들을 소화해 내는 모습은 스타 탄생을 예감하기에 충분했다.

똑같은 건 싫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악기를 처음 시작했어요. 백과사전을 여러 권 놓고, 그 위에 방석까지 깔고 서서 악기를 잡았죠.” 같은 악기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늘 ‘이렇게 훌륭한 악기를 좀 더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더블베이스는 성민제의 말처럼 “없으면 안 되지만, 있으면 티가 안 나는 악기”다. 바이올린ㆍ피아노 같은 민첩한 악기들이 재잘댈 때, 낮은 음역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교향곡에서는 사람들이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뭘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한 페이지 넘게 같은 음을 계속 그어주느라 팔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플 때가 있다니까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성민제는 어려서부터 더블베이스의 그 한계가 싫었다. 그래서 바이올린ㆍ첼로를 위한 작품을 더블베이스에 맞게 바꿔 연주하기 시작했다. 편곡자들과 상의해 더블베이스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날아다니는 베이스’를 무대에 펼쳤다. “이제는 원래 더블베이스를 위한 음악을 연주하면 어색할 정도”라고 한다.

독일로 떠난 지 1년, 성민제는 “어려서 더블베이스 할 때와는 또 다른 생각들을 해요”라고 말했다. “신기하고 새로운 점으로 악기를 알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봐요.” 그는 현재 베를린필하모닉의 전 수석인 나빌 셰하터(30)에게 배우고 있다. “20대에 세계적 교향악단의 수석을 맡았던 것은 모두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배웠죠. 지금도 연주 실력으로 제 승부욕을 자극하는 스승이에요.”

음악의 본고장에서 조금은 주눅이 든 걸까. “물론 제가 모르던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많이 알게 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게을러지지만 않는다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하얀 얼굴에 천진해 보이는 미소에서는 스무 살의 수줍음이 엿보이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승부욕이 자리하고 있다.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저도 깜짝 놀랄 정도의 집중력으로 승부에 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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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베이스도 이런 연주가 되느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재능 때문이었다. “누군들 어려운 곡을 연주해 주목 받고 싶지 않았겠느냐”라고 묻자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주법 등이 나에겐 어렵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그에게 지난해 9월 뮌헨 콩쿠르의 낙방은 첫 시련이었다. “저 사실 1차에서 떨어졌어요.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결과라고 생각했죠.” 참가자ㆍ심사위원들이 주목하던 유력한 우승 후보자가 미끄러진 셈이다. 그는 멀쩡히 연주를 하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던 중에 낙방 통보를 받았다. “견제를 받아서인지, 동양인에 대한 차별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하지만 이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또 도전할 거예요.” ‘쾌속 세대’다운 발상이다. 그는 “콩쿠르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서른 살 전까지는 세계 각국의 주요 무대에서 손짓을 받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 더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뮌헨 음대의 더블베이스 앙상블에 들어갔다. 올해 11~12월 베이징ㆍ서울ㆍ뉴욕 등지로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 악기를 시작했을 땐 주위에 동료가 없었어요. 선화예중에서도 입학부터 졸업까지 이 악기를 하는 사람은 저 혼자였죠.” 그래서 그는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실내악 무대가 특별하다고 했다. 거대한 ‘반주’ 악기를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과정에서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는 이렇게 한계에 부닥쳤다가 다시 일어서가며 성장하고 있다. 그 회의감을 이기는 방법 중 하나가 다양한 악기와의 연주다. 성민제는 이달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정명훈ㆍ김선욱 등과 함께 ‘7인의 음악인들’ 무대에 출연한다. 여기에서 연주할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는 더블베이스 주자의 진가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어 다음 달 4일에는 바이올니스트 김수연,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조이 로와 함께 실내악 무대에 선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작품을 편곡해 들려준다. 성민제가 새로 내놓을 앨범에 들어있는 곡들이다.

성민제의 꿈은 현실적이다. 우선 히트하는 음반 발매를 꿈꾼다. 자신의 연주회마다 객석이 꽉 차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나길 바란다. 또 더블베이스에 딱 맞는 편곡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작곡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나중에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독주를 병행하는 연주자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이 꿈이 스무 살 청년에게 자기 몸집만 한 악기와 매일 씨름하는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민제는

1990년 서울 생

2006년 선화예중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입학

2006년 독일 슈페르거 콩쿠르 우승

2007년 러시아 쿠세비츠키 콩쿠르 우승

2007년 대원음악상 장려상 수상

2008년 금호음악인상 수상

2009년 첫 음반 ‘더블베이스의 비행’(도이치 그라모폰)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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