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유일 만점 '팬터지 소설광' 손수아 양|"수능 지문도 소설처럼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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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험 지문이 소설처럼 술술 읽히더라고요."

유난히 어려웠던 이번 수능시험 언어영역의 유일한 만점자는 SF팬터지광(狂)인 여고생이었다. 학교 만화반에서 만화를 그리고, 인터넷에 창작 팬터지 소설을 올리는 아마추어 팬터지 소설가 서울 휘경여고 3년 손수아(18·사진)양.

孫양의 성적은 재수생 강세 속에 재학생이 거둔 '쾌거'다. 입시학원의 족집게 강의도 한번 들은 적이 없고, 문제풀이식 공부와도 거리를 두었기에 더욱 그렇다. 강남이 아닌 강북지역의 학생이라는 점도 입시 학원가에선 화젯거리다.

"그냥 스토리 자체가 좋았어요. 시험지문조차 재미있는 스토리로 느껴졌고, 다음 시험에선 어떤 지문을 접하게 될까 기다려지기도 했지요."

어릴 때부터 명작추리소설과 그리스 신화를 탐독했던 그는 고1 때 교내 만화반에 들었다. 각종 만화를 섭렵하며 만화창작을 하다 '해리포터 시리즈'등 SF 팬터지 소설을 접하면서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소설에서 접하며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

고2 때는 직접 팬터지 소설을 창작, 인터넷동호회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용과 요정이 등장하는 입문단계의 작품이었지만 이때 문장력과 창의력이 한 차원 높아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후 교과서·참고서의 소설을 읽을 때도 이를 게임시나리오나 팬터지로 바꾸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고, 한번 접한 시험지문은 반드시 원문으로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모의고사 지문에서 처음 접한 '독짓는 늙은이'(황순원 작)를 찾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이런 잡독(雜讀)·창작 습관 때문인지 짧은 지문만 봐도 전체내용이 금방 파악돼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늘 최상위권인 1백10점대를 유지했다.

"만화나 소설도 공부의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해 간섭하지 않았다"는 어머니 최선옥(43)씨의 기대대로 孫양은 서울대 인문학부 수시모집에 지난 4일 최종합격했다. 수능성적은 물론 1등급이다. 이 학교 국어과 양신모 교사는 "최근 수능 언어영역에 생소하고 긴 지문이 많아 속독력·추리력이 필요하다"며 "孫양의 경험이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점수 발표 직후 학교 정문에 '축 전국유일 언어영역 만점'이란 플래카드가 걸리면서 孫양은 일대 중·고생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됐다. 공부비결을 물으러 오는 인근 학교 교사·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孫양의 꿈은 "중국문학이나 중국사를 전공해 중국고전 번역가나 역사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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