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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만 잘해도 절반은 '카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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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술 약한 사람 못지 않게 노래 못하는 사람도 연말이 괴롭다. 내일 모레면 손자 볼 나이가 돼서까지 '노∼래를 못하면 장가(시집)를 못가요. 아∼ 미운 사람'이라는 놀림을 받고 있자면 울화통이 터진다. 또 웬만큼 노래에 자신 있는 사람도 장소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선곡은 쉽지 않다. 구지윤·서수남·심수천·이병원·나윤재·윤승연씨 등 방송가와 문화센터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노래 강사들에게 송년 모임에 어울리는 선곡법과 음치 탈출법을 들어봤다.

# 노래 솜씨 없을 땐 댄스곡으로

국영기업체 간부인 조재영(48)씨. 스스로는 80점대의 가창력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그가 마이크를 쥐면 좌중이 썰렁해진다. 딴에는 젊은 부하직원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고한우의 '암연', 부활의 '사랑할수록' 등 1990년대의 잔잔한 히트곡을 고르지만 신세대들에겐 이 역시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가사까지 우울한 내용이어서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기 일쑤다.

노래 강사들은 분위기를 해치는 선곡은 '범죄'라고 입을 모은다. 흥겨운 분위기에서 혼자만 감정에 빠져 부르는 노래가 특히 그렇다. 작곡가 겸 노래 강사 심수천(45)씨는 "윤시내의 '열애',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 처럼 부르는 사람만 심취하기 쉬운 노래는 회식 자리에서 피하라"고 충고했다.

술자리 뒤 찾은 노래방에서 가곡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팝송을 부르는 것도 금물이다. 왠지 고상해 보일 것 같아 부르지만 듣는 사람은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회사 모임에서 중·장년층은 무조건 신곡을 고르는 것이 좋다. 가요 교실을 운영하는 이병원(41)씨는 "20∼50대가 모인 자리에서 50대가 '박달재'를 넘어가고 있으면 그 모임 분위기는 완전히 망친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가 좀 되는 사람은 캔의 '내 생에 봄날은'이나 윤도현의 '사랑2' 같은 노래가 어울린다. '내 생에…'는 약간 술취한 듯 블루스 느낌으로 부르면 되고 '사랑2'는 반주에 따라 몸을 흔들며 충분한 음량으로 노래하면 좋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빠른 댄스곡을 불러야 못하는 티가 덜 난다. 웬만큼 틀려도 빠른 리듬 속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한 곡을 다 부를 자신이 없다면 젊은 후배를 일으켜 세워 함께 불러도 된다. 어려운 리듬은 후배에게 떠밀고 자신은 후렴구만 불러도 한 곡을 다 부른 효과를 낼 수 있다.

노래 강사 구지윤(59·여)씨는 "이정현의 '아리 아리', 싸이의 '챔피언', 김건모의 '짱가' 등이 후렴만 불러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노래"라고 추천했다.

아무래도 신곡에 자신이 없다면 최근 영화·광고 등에 나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옛날 노래를 부르면 된다. 영화 '가문의 영광'에 나온 '나 항상 그대를(이선희)'이나 '광복절 특사'에 사용된 '분홍 립스틱(강애리자)' 등이 그것이다. 팝송을 좋아한다면 한 자동차 광고 배경 음악으로 사용돼 인기를 끌고 있는 60년대 히트곡 '오 캐럴'(닐 세다카) 등도 괜찮다.

반면 젊은 세대는 옛날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면 신곡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노래 강사 나윤재(36·여)씨는 "나이 든 세대를 배려하려면 요즘 나온 트로트보다는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 윤심덕의 '사의 찬미', 김세레나의 '초립동' 등 최소한 배호 이전의 노래를 고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음치 고민은 이제 그만

5년간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지난해 항운(航運)업체에 취업한 홍민기(30)씨는 '술 고문' 보다 '노래 고문'이 더 무섭다. 음치(음정)·박치(박자)·몸치(춤)·떨치(노래만 시키면 벌벌 떠는 증상) 등 소위 '4치'에 모두 해당되는 데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최신 가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홍씨는 "2차로 갈 노래방이 무서워 술자리를 피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음치는 없다고 한다. 단지 노래를 듣고 불러볼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15년째 노래 교실을 운영하는 가수 서수남(59)씨는 "진짜 음치는 몇 만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라며 "일단 음악을 많이 들어 귀를 틔우면 노래도 나아진다"고 말했다.

노래를 들을 때는 다른 일을 일절 멈추고 노래에만 집중해야 된다. 운전을 하거나 청소를 하면서 노래를 들어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 소절씩 잘라 수십번씩 반복해 들으며 따라부르는 것도 음치 탈출에 좋은 치료법이다. 선곡할 때는 멜로디가 너무 쉬운 곡은 피해야 한다. 이병원씨는 "나훈아의 '사랑' 처럼 멜로디가 아주 단순한 노래는 웬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도 맛깔스럽게 부르기 어렵다"며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 등 적당한 변화가 있는 멜로디가 오히려 연습하기 쉽다"고 말했다.

직장인 대상 노래 교실을 운영하는 윤승연(31·여)씨는 "g.o.d의 '거짓말' 등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부르는 곡을 골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 곡을 다 연습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하 기자 odinele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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