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화장·납골 확산… 3조시장으로 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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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최근 일본 장례업계 관계자 20명이 한국을 방문해 국내 시장을 샅샅이 조사하고 돌아갔다.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의 장례식장 등 전국의 관련 시설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장례업계가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한 것이다. 국내는 아직 화장·납골뿐 아니라 화환·장례연출·장례자동차 등 관련 서비스가 낙후돼 이들이 시장개척 차원에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장례업체인 스카이그룹도 한국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최근 방한한 이 그룹의 월터 김(66)회장은 "한국의 장례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며 "경기를 타지 않는 업종이어서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金회장은 최신식 전자동 '소형 화장로' 판촉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화장로는 도심의 병원 영안실에 설치할 수 있는 첨단 무공해 소각로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金회장은 미국 내 화장·납골 장비 등 10개 장의용품 제조회사의 한국·아시아 총판권을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일본 등 선진국 장례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국내 장례시장이 현대화 추세 물결을 타면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관련 법규가 바뀌어 매장을 억제하고 화장을 권장하자 선진국형 장례업종이 꿈틀거리고 있다. '돈 되는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일부에서는 난립·과열 양상까지 보인다.

◇대학에선 인기학과로 자리잡아=경부고속도로 수원인터체인지 인근에 있는 화장장인 연화장. 수원시가 지난해 1월 문을 연 이곳은 흡사 공원과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장시설·장례식장·납골당 등이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유재혁씨는 "과거 무연고자·전염병 사망자를 처리하는 곳이라는 혐오시설 이미지를 벗고 도심지 추모공원으로 탈바꿈했다"며 "실제로 밤이면 데이트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민들이 친밀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화장장·묘지·납골당·장례식장 등 이른바 장례산업이 혐오 업종 이미지를 탈피해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선 전국에 있는 장례 관련 1천여 업체가 현대화 바람을 타고 있다.

최신 영안실 시설을 갖춘 병원 장례식장이 4백50여개로 늘어났으며, 전문 장례식장만도 50여개에 이른다. 화장장도 전국에 45개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도심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매장 묘도 가족납골당 방식으로 새롭게 꾸미는 추세다. 납골시장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연간 사망자수를 보면 약 25만명이다. 또 장례비용(묘지 값 포함)을 따지면 한건당 평균 1천2백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국내 장례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장례 상담과 묘지알선, 영구차 대여 등을 인터넷으로 토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이버업체도 현재 80개가 성업 중이다. 하늘나라(hanulnara. okcashbag. com), 퓨너럴앤닷컴(www. funeraln. com), 국제장의사(www. 4444. st) 등 장례 관련 전자상거래업체가 성업 중이다. 최근에는 TV홈쇼핑업체들도 수의·납골함 등을 판매하는 특별행사를 자주 개최해 소비자들이 안방에서도 장례 상품을 친근하게 접하고 있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국내 장례산업은 2000년 이후 연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례산업이 이같이 급부상하면서 대학에서도 관련 학과가 인기다.

서울보건대는 올해 장례지도과를 2년제에서 3년제로 바꿨다. 장례 실습 등을 제대로 배우려면 2년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생수도 40명에서 80명으로 늘렸다. 전문가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1999년 학과를 만든 뒤 3회에 걸쳐 졸업생 1백여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종합병원 영안실 등 관련 업계에 거의 1백% 취업했다.

대전보건대도 올해 처음으로 장례지도과를 설립, 한해 80명씩 학생을 뽑고 있다. 이밖에 동국대는 장례문화 전공 석사 과정을 개설했다.

이필도 서울보건대 교수는 "장례업이 혐오·천민 업종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가 바뀌면서 산업으로 정착되자 학생들도 새로운 개척분야로 인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제점도 여전히 많아=장례업의 전문성 부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인식됐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렇다 보니 수의·관·화환·접대음식·납골당 등을 둘러싼 소비자 불만과 바가지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납골시장이 돈 되는 사업이라며 너도나도 뛰어드는 바람에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호화장식 납골용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보통 1천만원(24기 기준)을 호가할 정도다. 5천만원짜리도 선뵈고 있다. 일부 종교단체와 관련업체에서 피라미드 방식까지 동원해 고가품을 일반 판매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수천만원씩 호가하는 한국식 가족묘(납골)의 경우 거품을 빼면 2백만∼3백만원 선에 일반 보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업체가 난립해 수익성만 추구하기보다 공익성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간업체만으로는 장례업의 현대화·공원화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는 '장례식장 서비스 표준안'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례서비스를 표준화해 질을 높임으로써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생활개혁실천협의회의 박제훈 간사는 "국내 시장은 현재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장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장례업 면허증·방부처리사 자격증 등 전문자격 제도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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