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몰래 데이트: '피아노 치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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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상처(喪妻)한 대통령이 딸의 담임 교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 교사는 과거 학생운동을 하면서 통일부 장관 손녀의 납치사건에 연루됐던 여인. 대통령은 정치 생명을 위해 애정을 부인하지만 결국 국민 앞에 진심을 고백하고 사랑을 찾는다.

로맨틱 코미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과거 금기시됐던 소재를 용감하게 코미디의 도마 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러브 이즈 어 매니 스플렌더드 싱(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을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자신에게 냉소적인 딸의 생일날 박진영의 댄스곡 '그녀는 예뻤다'에 맞춰 쇼를 선보이는 등 대통령이라는 권위적인 존재를 한껏 끌어내려 인간적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로 매만진 솜씨도 칭찬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딸의 벌을 대신 받아 '황조가'를 한자로 1백번 쓴다거나,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주점에서 몰래 데이트를 즐기는 식의 에피소드가 현실적이냐 아니냐 하는 식의 논란은 무의미해 보인다. 커플로 등장하는 안성기와 최지우도 20년 넘는 나이차가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안성기는 노력하는 배우라는 이미지답게,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르지만 건반을 외우는 '우직한' 방법으로 꽤 들을 만한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호평은 여기까지. 이 로맨틱 코미디는 뭔가 부족하다. 툭툭 끊기는 느낌의 진행은 이 영화가 의도하는 웃음을 공중에 군데군데 흩뿌릴 뿐이다. '마침내…'하며 갈등이 풀어지고 화해가 제시되는 순간, 감동이 밀려오는 대신 뜬금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짜임새가 없기 때문이다. 한 계단씩 스토리를 쌓아올려가는 기초 공사가 부실한 탓에, 대통령 한민욱(안성기)과 교사 최은수(최지우)가 마침내 키스를 하는 대목이나 은수가 민욱의 딸 영희(임수정)와 마음을 터놓게 되는 장면 등 클라이맥스에 올라서도 효과가 신통치 않다. '몽정기'의 스타 이범수가 노숙자 역으로 카메오 출연한다. 이범수는 영화 중간, 나이트클럽 전단지에도 등장한다. 6일 개봉. 전체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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