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외지에 가 있는 ‘천안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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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공주박물관 2층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에는 천안·아산의 유물이 많다. 특히 천안 유물은 고대문화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왜 이렇게 공주박물관에 천안 유물이 많을까. 이유는 이렇다. 최근 10여 년 동안 천안지역 대부분 발굴은 공주에 있는 기관들이 수행했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은 용원리·백석동·업성동·남관리 등 여러 곳을 발굴했고, 충청문화재연구원(공주)도 두정동·신방동·용곡동·백석동 등 발굴을 책임졌다. 게다가 천안에는 당시 박물관이 없었고 공주에는 국립박물관이 있었다.

2년전 천안박물관이 개관했다. 그런데도 천안박물관은 아직 ‘껍데기’뿐이다. 천안서 출토된 유물들이 공주·서울 등지로 가 있어, 많은 돈을 들여 복제품을 사 전시하고 있다.

국립공주박물관 2층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 한켠을 차지한 천안 성남면 용원리 출토 유물. 현 휴러클리조트 인근에서 나온 이들 유물은 서기 400년경 지방세력의 존재를 오롯이 보여준다. 왼쪽 부스에 횐두대도가 전시돼 있다.


◆공주박물관 곳곳에 천안 유물=공주박물관은 1971년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 박물관 규모가 순식간에 커진 곳이다. 현재 1층은 모두 무령왕릉 유물이 전시되고, 2층은 공주를 포함한 충남 각지의 유물들로 채워져 있다.

2층 고대문화실은 입구부터 ‘천안 유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백석동 출토 반월형 석도, 둥근 돌도끼, 두정동의 목걸이 등. 조금 더 들어가면 한 코너는 천안 유물 일색이다. 청동기시대 항아리 손잡이에 그려진 ‘웃는 얼굴’이 단독 조명을 받으며 맨앞에 전시돼 있다. 천안 두정동 출토품이다.

특히 천안 목천IC 인근 휴러클리조트가 있는 성남면 용원리의 유물은 한 구역 네개 부스를 독차지하고 있다. 우선 검은 간토기 등 토기류가 보인다. 곧이어 환두대도, 마구(馬具) 일체, 화살통 장식 등이 잘 전시돼 있다. 용봉무늬와 칼자루 은상감무늬 환두대도 두 자루가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바로 옆엔 금동관모를 복원해 놓았다. 마구의 경우 각 요소를 설명하는 걸개 그림이 걸려 있다. 화살통 장식도 인근에서 나온 사례가 없어 특별히 신경써 진열했다. 이들 용원리 유물은 한성백제시대(BC18년~AD475년) 천안에 있었던 힘 센 지방세력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들로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국립공주박물관의 용원리 마구(말장식) 코너와 그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천안박물관(오른쪽).


◆서울로 ‘출장’ 간 천안 유물=대표적인 천안 유물 몇 점이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 측에 물어본 즉, 2005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신축 개관 때부터 장기간 ‘출장 전시’를 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수입된 ‘명품’으로 알려진 용원리 출토 계수호(鷄首壺, 닭머리 주전자), 청자 잔. 그리고 백제 중앙정권에서 천안 지방세력에 하사된 성남면 화성리 환두대도. 칼 고리에 은이 예쁘게 상감돼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백제실에 전시 중이란다. 공주박물관 강원표 학예연구사는 “이들은 백제의 중요 유물로 많은 관람객이 찾는 중앙박물관 백제실에 전시하기 위해 장기 대여 중”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천안시도 2년전 박물관을 열었는데 왜 여지껏 천안 유물 진품 대신 복제품을 전시하는 걸까. 대여 전시가 가능하다는 걸 모른 걸까. 유병하 공주박물관장은 “천안 유물이 공주박물관에 많은 것 사실”이라며 “대여 전시는 예전부터 가능했던 것으로 최근 천안박물관과 대여 전시를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용원리 출토 계수호는 200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장기대여 상태.

◆별도 설명문 없는 용원리 코너=공주 의당면 수촌리는 천안 용원리와 마찬가지로 서기 400년경 조성된 백제시대 유적지로 비슷한 유물상을 보여준다. 공주박물관에선 이들 유물에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다. 수촌리 유물 전시 코너 입구엔 ‘공주 수촌리 유적’이란 별도 설명 표지판을 붙이고 “수촌리는 한성백제의 중앙정부가 지방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라고 적고 있다. 반면 용원리 유물 부근엔 ‘마한에서 백제로’라는 천안·공주·서산 등 유물을 아우르는 종합 설명문이 있을 뿐이다.

글·사진=조한필 기자



천안 성남면 용원리 유적

1998년 목천IC 바로 옆에 들어서는 천안종합휴양관광지 조성을 위해 사전 발굴 조사가 있었다. 지난달 2일 개장한 휴러클리조트 부지를 포함한 지역의 150여 기토광묘·석곽묘에서 한성백제시대 유물이 대거 쏟아졌다. <본지 2010년 7월 16일자 l 6,7면 참조>

특히 용·봉황무늬가 있는 환두대도는 앞서 나온 인접 성남면 화성리 출토품과 함께 주목을 끌었다. 계수호·청동 잔 등 중국에서 수입한 명품도 모습을 보였다. 이외 지배계급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논 물꼬트기용 살포가 나왔고 화려한 장식을 한 화살통이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많이 부식돼 전반적인 실체를 확인할 순 없지만 금동관모 장식 일부가 나와 무덤 주인공이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였음을 증언했다.

학계에선 이들 유물 출토를 계기로 마한시대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이 천안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기기도 한다. 용원리 유적은 그후 발굴된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유적과 함께 한성백제의 유력 지방세력 존재를 알리는 대표 유적으로 자리매김 했다. 한강유역에 있던 백제는 천안·공주 등지의 강력한 마한세력에게 금동관·환두대도·중국도자기 등 선물을 주면서 환심을 사 지배권역에 뒀던 것이다.

용원리 유적은 본지 기사 게재 이후인 지난달 23일 전종한 천안시의원이 의회 ‘5분발언’을 통해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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