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난 고3 교실 빈둥빈둥 '空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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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러면서 꼭 학교에 가야 되나요. 논술하고 면접 준비는 어떡하라구…. "

경기도 고양의 한 인문고교 3년생 李모(18)군은 요즘 잠깐 얼굴을 보이기 위해 학교에 가는 시간이 정말 아깝다. 아침 나절 한 두 교시 수업을 위해 30분 이상 버스로 등하교를 해야 한다. 그나마 정상 수업은 아니다. 대부분 교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 비디오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했거나 대학을 포기한 애들의 소란 때문에 교실에선 아무 것도 못해요. 아까운 시간만 그냥 낭비하는 거지. "

지난주엔 '체험학습'이라며 단체로 서울의 국립박물관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한번으로 그만이었다.

답답하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李군의 담임 金모 교사는 "학생들은 출석했다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등교를 하고 있고, 그걸 알고도 방치해야 하는 교사들도 정신적으로 고역"이라고 말했다.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해도 해방감에 젖은 학생들이 도무지 호응을 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면 되풀이되는 고3 교실 풍경이다. 출석일수(연간 2백20일)를 채워야 하므로 등교는 계속하지만 교과 진도와 시험이 끝난 마당에 공부 분위기가 날 리 없다. 학기 중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수시 모집이 늘어난 올해엔 더욱 심해졌다.

올해부터는 특히 대부분 고교가 예년보다 늦게 연말에나 방학에 들어간다. 2월 학기와 봄방학을 자율적으로 없앤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식의 허송세월을 앞으로도 한달이나 더 해야 하는 셈이다. 수능 이후의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 학교가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은 모범 사례다. 서울 경복고 같은 곳이 그렇다. 이 학교는 지난 19일 서울대 최재청 교수를 초청해 3년생들을 대상으로 과학특강을 했다. 26일에는 토익(TOIEC) 모의시험을 봤고, 30일에는 텝스(TEPS) 모의시험을 치른다.

민속박물관·전쟁기념관 견학에다 연극(그리스)·영화(광복절 특사) 단체관람도 했다. 다음달 3일에는 성희롱 예방 특별교육을 실시한다. 논술·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따로 모아 매일 특강을 하고 있다.

한편에선 조기 졸업론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무원고 김필수 교사는 "관련 법을 고쳐서라도 고교 졸업식을 11월 말로 앞당기는 것을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내년에 대학들의 수시모집 인원이 더 늘어나면 무질서와 혼란도 더 커져 11월 이후 고3 교실 무용론까지 나올 것"이라고 지적하고 "조기 졸업으로 생긴 시간을 학생 스스로 연수나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유용하게 쓰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고교가 단순히 대입 준비 학교가 아니라 자체 교육목표가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학교가 자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남중·정현목 기자

njkim@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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