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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했다고 피곤하냐" 야멸찬 어머니 말씀 엄살 막는 방패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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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어머니를 상대로 한 수 접히는 일이 있을 때, 그녀의 공격적 화법을 피하는 나의 졸렬한 방법은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환부를 내밀어 가책과 연민을 요구하는. 나의 모든 게 도대체 아슬아슬 충고할 일 투성이란 건 알겠지만, 어머니의 비난은 나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함임은 잘 알지만, 모든 옳은 지적은 언제나 상처를 남긴다.'한 남자가 제대로 살기가 얼마나 골치 아프고 힘든 사회인지 알긴 아느냐'고 좀 꿀리는 대꾸를 해대면 어머니는 한 걸음 물러나는 듯하다가 두 걸음 되돌아와 나를 윽박지르곤 하셨다. "너, 맨날 피곤, 피곤 그러는데, 도대체 뭘 가지고 피곤하다 그러는 거니? 어디 살이 아픈 거니? 아님 졸린 거니? 난 네 나이 때 뭐가 피곤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는 온 정신을 다잡고 뛰어들어도 시원치 않을 세상에 피곤하다고 말하는 걸 가당치도 않아 하셨다. 물론 나는 본질적인 투정꾼이었다. 그럼 피곤해할 자격을 잃어버린 비겁과 게으름은 기세를 잃고 주춤주춤 방으로 피신하고마는 것이다.

첫번째 직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처음 석달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저녁 9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었다. 일은 일대로 금방 무친 겉절이처럼 상큼하고 맛있다지만, 그 모든 명분들이 노는 것만 못했다. 어느날 어머니에게 내일 월차를 내 하루 쉬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주머니 속에 움켜쥔 주먹을 빼보이듯 단 한 마디로 나를 제압하셨다. "네가 뭘 한 게 있다고 쉬니?"

그때 나는 초보적 복수심 때문에 월차를 내진 않았다. 어머니의 말이 턱없이 그르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떻게 나의 피곤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후배들을 통해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 시작되었다. 나 역시 후배들이 지금 겪는 모든 과정을 번연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무나 일이 많으며, 미칠 듯이 피곤하다고 호소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럴 때 나의 대꾸는 부지중에 어머니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젊은 애들이 뭐가 그렇게 피곤하다는 거니? 나는 네 나이 때 네 세 배의 일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편도선이 부어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네가 피곤해서 그래"라고 순하게 긍정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찬찬히 헤아리시면, 나는 이게 엄살은 아닌지, 이 피곤이 정당하긴 한지를 금방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것이다.

이충걸·『GQ코리아』 편집장

norway@do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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