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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신해 소송할 권리 보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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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도네시아의 지진해일이 온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문명을 자만한 인간들이 대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31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휴양시설과 새우양식장을 건설하고 맹그로브를 마구 베어내는 바람에 남아시아 지역의 쓰나미 피해가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재앙의 원인이 밝혀질 것이지만 분명 인간들의 무모한 개발이 수십만명의 인명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류는 자연을 무제한 남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자연은 개발 또는 심미(審美)의 대상이 아닌 인간 존립의 원천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 같은 생각에서 인류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환경회의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선언하고, 92년 브라질 리우의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선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구현하기 위한 리우선언을 발표했다.

우리에겐 생소한 개념이지만 자연에도 권리가 있다. 이는 72년 남캘리포니아대학 크리스토퍼 스톤 교수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수목의 당사자 적격(適格)'이란 논문을 통해 "자연물에도 법적 권리가 있고 그 권리가 침해되면 이를 방어하고 회복과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은 7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종(種)의 보호법(ESA)'을 만들고 "시민 누구든지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프랑스도 76년 자연보호법에 자연권의 존립(자연생태계.자연경관.자연자원은 파괴 원인에 대항해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 단체 출소권(자연 고유의 권리가 침해될 때 그 권리를 대신 받아 행사하기 위해 보호단체에 출소권을 준다)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같은 자연의 권리에 대해 아직도 전근대적 의식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0년 3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자연경관과 학술자원 보호를 위해 지역주민이 도지사를 상대로 송악산 유원지 개발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03년 3월 대법원은 "원고가 사업장으로부터 3㎞ 밖에 거주하고 있어 원고 자격이 없다"고 판시, 본안 심의의 길을 막아버렸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한 것이다. 2004년 4월 19일 울산에선 "도롱뇽을 지키자"는 시민들의 소송을 울산지방법원이 "원고 부적격"이라며 본안 심의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이것이 우리 사법부의 의식 수준이다.

대자연은 완전하면서도 무한한 힘을 가진 조화다. 이 조화가 깨질 때 어떤 큰 재앙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이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누구나 자연물을 대신해 소송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신상범 제주환경연구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