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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샹파뉴, 원산지 명칭 보호 뒤 땅 값 150배 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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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20면

#“프랑스에서는 와인의 지리적 표시인 ‘원산지 명칭 보호(AOC) 제도’가 승인된 이후 해당 토지가격이 150배까지 올랐다. 샹파뉴의 경우 1㏊의 포도밭에서 5억원 정도의 수입(밀농사의 1000배)이 발생한 지역도 있다.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 경작 면적은 1.8%이지만 농가 소득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특허청 발간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도에 대한 Q&A’ 중

명품 도약하는 첫걸음, 지리적 표시제

#“지리적 표시제 한다고 해서 용역비다 뭐다 해서 수천만원을 썼다. 그런데 매출이 늘거나 값이 올랐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사람들은 지리적 표시제와 원산지 표시제도 구분 못 한다. 게다가 과일이나 채소는 잘해야 일본에 수출하는 정도라서 상표 때문에 문제될 일이 거의 없다. 헛돈만 날린 셈이다.”
-한 지역단체 영농조합법인 관계자

지리적 표시제의 두 모습이다. 지리적 표시가 전통이 되고 품질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을 때, 농촌 지역의 살림살이는 눈에 띄게 나아진다. 그러나 상품 박스에 마크 하나 더 붙이는 것에 그친다면, 번거로운 행정 절차가 하나 느는 것에 불과하다. 지리적 표시제는 만능이 아니다. 제대로 활용돼야만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등록은 끝이 아니라 시작
1999년 지리적 표시제가 국내에 도입됐을 때 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농민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지리적 표시’로 등록만 되면, 프랑스의 고급 와인처럼 ‘지명=명품’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것으로 믿었다. 상품값도 오르고 매출도 늘어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으로 봤다. 이런 기대감에 1호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보성녹차를 비롯해 최근까지 100개가 넘는 특산품이 지리적 표시로 등록됐다.

경제적 효과는 있다. 소비자들은 ‘지리적 표시’(혹은 단체표장) 마크가 있으면 아무래도 다른 제품에 비해 낫겠지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상품은 유사품이 시장을 갉아먹는 걸 막을 수도 있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특산품이라면 지리적 표시 등록 자체가 홍보 효과를 낸다. 보성녹차는 2002년에 지리적 표시 등록 후 1년 만에 재배 면적이 72㏊, 재배 농가는 60가구가 늘었다. 녹차 중에서 최상급이라는 우전은 2001년 100g당 4만원이던 것이 2003년엔 최고 10만원까지 뛰었다. 보성녹차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보성 녹돈’ ‘녹차 해수탕’ 등을 연계한 관광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이 잘 풀렸을 때 얘기다. 100여 개에 이르는 지리적 표시 등록 특산품 가운데 보성녹차처럼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지리적 표시제의 보호를 받으려면 ▶역사적으로 특산품이 우수했고 유명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유명성 혹은 역사성) ▶특산품의 품질이 해당 지역의 토질이나 기후 등 특성에서 기인하며(지리적 특성) ▶해당 상품의 생산과 가공이 그 지역에서 이뤄져야 하는(지역 연계성) 등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고문헌을 뒤져 특산품의 역사적 근거를 수집하고 토지의 어떤 성분이 제품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면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지리적 표시(혹은 단체표장)로 등록하기도 전에 용역비로만 2000만~3000만원을 쓰는 게 예삿일이다.

그런데 효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지리적 표시(혹은 단체표장)로 등록됐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저절로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한 민간연구소가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지리적 표시제가 시행된 지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소비자의 19%만이 지리적 표시제에 대한 정보를 접해봤다고 답했다. 게다가 소비자 대부분이 지리적 표시제를 원산지 표시제와 혼동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차별화나 매출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는 일단 등록만 끝내면 실적이 잡히기 때문에, 지리적 표시제 등록 이후의 사업화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리적 표시제 효과만 믿었던 생산자 단체로서는 실망스럽다. 이용우 한국지리적표시농축임가공식품연합회 회장은 “지리적 표시제는 당장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안수박’은 지리적 표시제를 발판으로 경제적 효과를 본 경우다. 2008년 4월 수박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지리적 표시 등록을 받았다. 함안군과 수박 생산자 단체는 이를 발판으로 그해 ‘수박 신활력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대한민국 대표수박 육성 프로젝트’를 따냈다. 2010년까지 3년간 총 75억원이 지원되는 사업이다. 이 돈을 가지고 함안수박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농어촌 체험활동과 지역축제 등 농촌 관광을 활성화했다. 함안군청 유수필 계장은 “지리적 표시 등록이 끝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함안수박을 더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이경희 계장은 “2008년 73억원이던 군내 수박 매출액이 올해는 190억원으로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용우 회장은 “당장 직접적인 혜택이 없다 보니 지리적 표시제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곳이 많다”며 “그러나 친환경인증이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기까지 상당 기간 걸렸듯 지리적 표시제도 정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철저한 품질관리로 소비자에게 ‘지리적 표시제는 좋은 품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식 세계화 발판으로
지리적 표시제가 가장 효과를 거둘 때는 해외 수출을 염두에 뒀을 때다. 지리적 표시(혹은 단체표장)로 등록됐다면 해외에 진출해 상표권 충돌이 일어났을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물론 지리적 표시제가 만능은 아니다. 특허청 전호범 사무관은 “상표법은 속지주의 원칙”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했더라도 미국 특허청에 따로 상표 등록을 해야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순창’ 고추장을 놓고 벌인 상표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1998년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리브라더스라는 아시안식품 도소매 유통회사가 ‘순창찹쌀고추장’이라는 상표를 미 특허청에 등록했다. 리브라더스는 순창이 유명 산지가 아니라 ‘순수한 창(Pure Spear)’으로 설명해 상표권을 받았다.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던 국내 식품회사 대상은 상표권에 대한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청정원 순창고추장’을 미국 수퍼마켓에 팔았다. 대상의 제품이 점유율을 높여가자 이에 위협을 느낀 리브라더스는 2001년 청정원 순창고추장을 팔고 있던 미국의 수퍼마켓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 및 부정경쟁 행위 중지’ 소송을 제기했다. 대상은 즉각 반박했다.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한국의 대표적인 지명”이라며 “리브라더스가 상표로 등록한 ‘순수한 창’이라는 뜻의 순창은 기만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2003년 2월 리브라더스를 ‘상표 무효화 및 업무방해 금지’로 고소했다.

2년여를 끈 소송에서 미 법원은 대상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상은 소송 비용으로만 200만 달러를 썼다. 미리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을 하고 미 특허청에도 상표 등록을 했더라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이었다. 2006년 영농조합법인 순천장류연합회는 ‘순창고추장’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출원해 이듬해 7월 등록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우리 특산품을 들고 해외에 진출할 때는 먼저 지리적 표시 등록을 하고 동시에 진출 지역에서 따로 상표권을 받을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특허청이 올 2월 지리적 표시 해외 권리화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실적이 거의 없었다. 순창고추장이 미국에서, 이천쌀이 미국과 유럽에서 상표권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해외 수출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인삼의 경우엔 국내에서조차 상표권 등록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7월에야 사단법인고려인삼연합회가 ‘고려홍삼(Korean Red Genseng)’이라는 이름으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출원했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 업체들의 태도는 배울 만하다. 2007년 2월 이탈리아 파르마 지역의 영농조합은 한국 특허청에 최고급 햄인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i Parma)’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출원했다. 결국 거절 결정이 났지만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자국 햄이 인기를 끌자 브랜드 가치 보호를 위해 상표권 등록에 나선 것이다. 이후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상표권 보호 조치가 이어졌고 2008년 12월에는 해외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가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됐다. 이를 포함해 최근까지 총 5개의 이탈리아 특산품이 단체표장으로 등록됐으며, 현재 바롤로·바르바레스코 등 와인 2종이 등록 심사 중이다.

지리적 표시제는 한식 세계화와도 통한다. 한류 열풍으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해외 한식당에 외국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식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춘천막국수(2009년 9월)와 전주비빔밥(2010년 2월)이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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