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르헤스 전집』 등 중남미 문학과 뒤늦게 짝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책에 대한 내 첫사랑은 러시아 문학이다. 도스토예프스키·체호프·고리키 등의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시베리아 벌판과 사모바르가 끓는 난로, 지바고와 라라가 만났던 시골의 작은 도서관들 때문에 내 젊은 가슴은 울렁거렸다. 결혼 뒤, 과천의 율목회라는 주부독서클럽에 들어갔다. 12년을 매주 화요일마다 회원들이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책에 대한 나의 편식은 줄어들고, 좀 더 넓은 책의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작가별·나라별·작품별로 나눠 1년 스케줄에 따라 책을 읽어나갔다. 나중엔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다가 회원들이 아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내 독서의 지평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을 쓰면서 마음에 남는 책은 상허 이태준의 『무서록』(깊은샘)이다. 그의 간결한 문장 속에 담긴 깊은 인생 철학은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또한 『중국현대단편선』 (혜원출판사)과 『일본대표단편선』 (고려원)은 기묘하게 엮어진 아시아 속의 세 나라의 운명과 사람들의 삶의 연결고리를 조감해 볼 수 있는 책들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은 결국은 그의 시리즈인 『느림』 등을 모두 읽게 만드는 냉철하고도 지성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래에 들어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책은 5권의 『보르헤스 전집』과 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민음사), 그 밖의 숨겨진 보석 같은 중남미문학 책들이다.

"아! 10년 전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제3세계의 책들에 대해 무지했던 스스로에 대한 질책, 그리고 이제라도 읽었다는 기쁨이 엇갈렸던 책들이 그것이다. 아직 내 곁엔 읽어야 할 책이 많다. 책이 있는 한 나는 그들을 계속 찾아나설 것이다. 오늘밤에는 수월 스님의 이야기인 『달을 듣는 강물』 (해냄)을 읽으며, 그 강물 속에 발을 적셔보리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