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규모 민주화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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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란의 개혁파 정권과 보수세력 간의 갈등이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13일 수도 테헤란에서 사법부의 개혁파 탄압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연 사흘째 계속됐다.

이날 대학생과 교수 3천여명은 지난 9일 사법부가 이슬람교를 비판한 하셈 아가자리 테헤란대학 교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데 반발, 사법부와 군부·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보수파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란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가자리 교수는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측근으로, 최근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교황에 비유하며 이란 성직자들을 비판한 죄로 체포됐다.

대학생 2천여명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의표시로 지난 9일부터 수업거부에 들어갔으며, 일부 교수들도 사임의사를 밝히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하타미 이란 대통령도 13일 "(사형)판결은 부적절했다"며 "이 같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사법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란 법원은 13일 "판결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하고, 판결 무효화를 주장하는 의회와 시위대의 요구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개혁파 의회의 공세에 대한 보복조치로 분석되고 있다. 의회는 지난 6일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을 사전심사하게 돼 있는 선거법을 개정, 후보심사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사법부는 곧바로 개혁파 정당인 '이슬람 참가전선'의 간부인 압바스 아부디를 잡아들이고 아가자리 교수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렸다. 의회는 10일 하타미 대통령이 사법부 결정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승인, 정면으로 맞서고 있으나 정국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파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모든 국가정책 결정권한을 쥐고 있는 하메네이는 "행정·사법·입법부가 주요 사안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민중의 힘에 호소할 것"이라며 강경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민중의 힘'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영국의 BBC방송은 "이란에서는 혁명수호대인 '바지스'와 기타 강경 민병대가 종종 '민중의 힘'으로 불리고 있어 무력진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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