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 잡았다 '느낌표' 캐주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6면

현대백화점 여성캐주얼팀 김종인 과장은 요즘 고민 중이다.

"저희는 원래 캐주얼 의류의 비중이 다른 백화점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그러나 올 가을엔 좀 다릅니다.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의 캐주얼 의류들이 생겨났고 그런 옷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김과장은 내년엔 매장에서 여성 정장을 조금 줄이고 캐주얼 의류를 늘려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미샤·데코 등 전통적인 여성복 브랜드 매출이 주춤하는 반면 '오브제' 등 화려하고 파격적인 옷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그는 "색다른 디자인의 캐주얼 브랜드는 기존의 옷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올 가을 백화점 3층 캐주얼 매장에 세 개의 새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캐주얼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른바 감성 캐주얼에 속한다. '캐너비''쌤' 등 올 가을에 새로 등장한 브랜드가 중심이다. 기존의 여성복과 달리 자유분방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캐주얼을 일컫는 말이다. 이 백화점 추은영씨는 "대학생들이 홍대 앞의 클럽에서 입는 옷과 닮았다고 해서 클럽 캐주얼이라고도 한다"며 "이런 옷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 캐주얼, 감성 캐주얼, 클럽 캐주얼, 스포티브 캐주얼, 캐릭터 캐주얼, 트래디셔널 캐주얼-.

'이랜드'와 '지오다노'로 대표되던 1980∼90년대 캐주얼이 '캐주얼'이라는 한마디로 설명되는 단순한 형태였다면 최근의 캐주얼은 각양각색이다.

편하게 입을 수 있다고 해서 이지 캐주얼, 디자인이 감각적이라고 해서 감성 캐주얼, 운동복을 닮았다고 해서 스포티브 캐주얼,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등을 이용했다고 해서 캐릭터 캐주얼 등 스타일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캐주얼이 여러 부문으로 세분화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여기에 올 가을 등장한 감성 캐주얼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닉스 인터내셔널의 '콕스', ㈜지앤코의 '캐너비', ㈜쌈지의 '쌤'은 감성 캐주얼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선두주자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기존의 캐주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디자인이다. 남성용 셔츠에 화려한 장미꽃을 수 놓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색상의 조화로 파격을 주기도 한다. 그중에서 콕스는 지난 8월 등장한 이래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는 브랜드다. 2개월 만에 매장 수를 18개로 늘렸으며,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는 영캐주얼 분야에서 매출 2위에 올랐다. 콕스 측에서는 이 같은 신장세에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고 한다.

콕스의 임은영씨는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천편일률적인 기존 캐주얼에 싫증을 내고 있다"며 "가격대를 조금 높이는 대신 신세대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냈다"고 말했다.

콕스와 함께 감성 캐주얼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캐너비와 쌤은 고가 전략을 구사한다. 청바지 하나에 20만원, 블라우스 하나에 30만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각각 영국과 일본식임을 표방하면서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감성 캐주얼의 또 다른 특징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점이다. 대학생 이치호(21)씨는 "동대문 시장의 수입 가게에서 겨우겨우 구할 수 있었던 옷들을 이젠 백화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며 "기존의 남자옷들은 비슷한 디자인 일색이었지만 요즘 나오는 옷들은 색상과 스타일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감성 캐주얼의 인기는 기존의 이지 캐주얼 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

연매출액 3천억원을 기록하며 캐주얼 시장의 1인자로 인정받아온 '지오다노', 고속 성장을 계속해온 '마루' 'TBJ' 등의 매출 신장세가 2000년 상반기를 전후로 주춤하는 양상이다. 캐주얼 브랜드들의 변신 노력도 활발하다.

이지 캐주얼 마루를 갖고 있는 ㈜예신퍼슨스는 올해 새 브랜드 'ETS''코데즈'를 만들었다. ETS는 여성적이고 섹시한 느낌의 캐주얼, 코데즈는 유럽풍의 감성 캐주얼을 표방했다.

예신퍼슨스의 석보애 마케팅실장은 "캐주얼 시장이 소비자들의 다양한 구매 욕구에 맞춰 세분화하고 있다"며 "그들의 수요에 맞는 새 브랜드 개발에 상당 액수를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복 느낌을 강조한 캐주얼도 인기다. 스포티브 캐주얼이라고 불리는 EXR코리아의 'EXR'는 운동복 같은 캐주얼로 지난 2월 시판 이래 1백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인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변신도 눈에 띈다.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명동·코엑스·대학로로 매장을 옮겼다. 또 스포츠 업체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적인 디자인을 강조했다. 덕분에 20대 초반 소비자들의 구매가 늘었으며 매출도 2년 사이에 10배 이상 늘었다.

내년엔 전통적인 숙녀복 브랜드들까지 감성 브랜드 시장에 뛰어들 기세다. 베스띠벨리·아이엔비유 등을 만드는 신원에서는 내년 초 북유럽식 감성 캐주얼을 표방한 '쿨하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여성복 'YK038'에서는 '흄'이라는 브랜드를, '미샤'로 잘 알려진 ㈜시선인터내셔널에서는 '애니알릭스'라는 브랜드를 만들 방침이다. 나산의 '조이너스'는 전통적 여성 정장브랜드에서 젊은층 대상의 캐주얼 브랜드로 바뀐다.

롯데백화점의 숙녀복팀 정원호 과장은 "월드컵을 기점으로 옷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며 "정장을 주로 입던 직장 여성들도 단품 위주의 캐주얼 복장을 즐기게 됐으며, 전통적인 스타일이 주를 이루던 캐주얼도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캐주얼 의류시장 규모는 1999년 상반기 1조4천5백억원에서 올 상반기 2조4천5백억원으로 커졌다. 3년 사이에 두배 가까이로 커진 것이다. 올해 전체로는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가격대별로는 1만∼3만원대의 옷이 가장 많이 팔린다. 10만원을 넘는 옷들도 구매자가 늘어 전체 의류시장의 36.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중간 가격대인 4만∼10만원짜리는 구입자가 줄어들고 있다.

정장 수트의 경우 10만원 미만의 구입비율은 줄어들고 20만∼40만원대 비율은 점차 높아지는 경향이다. 10만원짜리 구입비율이 3년새 27.8%에서 16.3%로 감소했고 40만원대 구입비율은 3.5%에서 7.6%로 늘었다.

한국섬유연합회의 심정헌씨는 "저가의 의류를 여러 벌 사는 것보다 하나라도 명품 등 고가의 좋은 옷을 사려는 쪽으로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고 있다"며 "무난한 옷보다 최신 유행의 특이한 옷을 좋아하고 신제품이나 유명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